OPEC·사우디의 미국·러시아 견제…54년 원유 카르텔 깰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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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원유가격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2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에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26일 두바이산 원유는 배럴당 76달러 선에서 사고 팔렸다. 지난 6월에 비해 31.5% 추락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원유 수요가 줄고 있어서다. 당연히 OPEC 회원국뿐 아니라 러시아 등 다른 산유국도 감산을 하자고 아우성을 친다. 석유를 팔아 나라 살림을 꾸려왔는데 가격이 적정 이하로 곤두박질치면서 재정 적자가 심해지고 있어서다. 원유 생산량 줄이기는 산유국의 절실한 과제다. 로이터ㆍ블룸버그 통신 등은 26일 “회원국이 원유 생산량을 어느 정도 줄이느냐에 따라 앞으로 몇 년간 유가 흐름이 결정되는 역사적 OPEC 총회가 열린다”고 묘사했다.

OPEC은 1960년 설립 이후 두 차례 석유파동을 일으킬 만큼 막강했다. 현재 전세계 원유 공급량 중에서 OPEC 회원국이 공급하는 비중은 약 40% 수준이다. OPEC이 사실상 카르텔을 구성해 세계 원유시장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출범 54년 만인 올해 카르텔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날 참이다. 미 경제웹진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26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미국처럼 원가 경쟁력이 높은 나라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원유 시장이 ‘카르텔 구조’에서 일반 재화 시장과 닮은 ‘원가 경쟁 구조’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총회를 주도할 사람은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알리 알-나이미(79) 석유장관이다. 사우디는 최근 석유 판매가를 오히려 낮추겠다고 밝혔다. 9월에는 하루 원유 생산량을 10만 배럴씩 늘였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전략이다. 이 기회에 손해를 보더라도 시장 점유율을 확실히 굳히겠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잠재적 경쟁국인 미국과 현재의 경쟁국인 러시아를 함께 견제한다는 의도도 있다. 꿩 먹고 알 먹기 전략이다.

미국의 셰일가스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강력한 다크호스다. 로이터는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OPEC이 감산하면 배럴당 생산원가가 40달러 이하인 미국산 원유와 천연가스가 세계 시장에 쏟아져 나올 가능성 있다”고 내다봤다. 공화당이 올 중간 선거에서 상하원을 장악해 최대 후원세력인 에너지 기업들의 숙원(에너지 수출)을 풀어줄 태세다. 미국 정부는 에너지정책보호법에 따라 원유를 전략자원으로 분류해 39년 동안 수출을 금지했다. 다만 올 6월 증류를 거친 콘덴세이트(초경질원유)에 대해서는 미국 기업 2곳에 수출을 허가했다. 셰일가스 붐으로 콘덴세이드 생산이 넘쳐나서다. 미국의 에너지 수출은 사우디를 포함한 OPEC 회원국에 비극이 될 수 있다. 이미 회원국 12개국 가운데 현재 유가(76달러)에서 올해 재정적자를 보지 않을 곳은 카타르와 UAE, 쿠웨이트뿐이다. 때문에 사우디는 유가가 떨어지는 것을 방치해 셰일가스 개발 수요를 줄이겠다는 생각이다.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지난해 여름 이후 1000억 달러(약 110조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5% 정도 규모다. 경제가 고꾸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사우디는 이번 기회에 러시아를 확실하게 압박하겠다는 계산이다.

외신들이 전하는 이번 총회 시나리오는 3가지다. 첫째는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는 ‘하루 생산한도(쿼터)인 3000만 배럴을 엄격히 지킨다’고 합의하는 것이다. 셋째는 감산을 합의하는 것이다. 사우디의 생각은 첫째 시나리오에 기울어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26일 블룸버그는 ”알-나이미 장관은 원유시장이 스스로 안정될 것“이라며 ”사우디와 미국 등 산유국이 감산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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