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수사 방향·정치권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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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운영 전 안기부 미림팀장이 4일 오후 서초동 서울지검에서 구속되어 구치소로 향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임현동 기자

'안기부(현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4일 안기부에서 불법 도청을 수행하고 그 내용을 담은 테이프 274개와 3000여 쪽의 녹취보고서를 외부로 빼돌려 보관해 온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로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58)씨를 구속수감했다.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던 공씨는 지난달 26일 자해 소동을 벌인 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입원해 오다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검찰은 구속영장에서 "추가 도청 자료의 존재, 도청 경위와 조직(미림팀) 운영 실태 및 유출 경위 등을 파악하기 위해 공씨의 신병 확보가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또 재미동포 박인회(58.구속)씨로부터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등을 건네받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를 5일 오후 2시 소환조사키로 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치권에서 특별법 제정 내지 특별검사제 도입을 추진하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사가 이제 막 본궤도에 오르는 판에 검찰 수사를 불신하고 현행 법률을 무시하는 정치권의 태도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날 출근길에 '특별법 제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치권은 정치적 논리가 있고, 우리는 법 집행기관으로서 할 일이 있다. 저쪽에서 하는 일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짧게 답했다.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도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면 모를까. (수사를)하고 있는데 맡겨 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특히 검찰은 '부실 수사' '축소 수사'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면 받아들이겠지만 불법인 도청 자료의 공개를 위해 검찰 수사력을 무력화하는 데 불만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특별법은 기존의 법률로 판단할 수 없는 새로운 행위를 규율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며 "현행법(통신비밀보호법)에서 엄연히 금지하고 있는 것을 위헌적 요소가 있는 특별법까지 만들어 공개하려는 것은 입법권의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고검 관계자도 "특별법 제정을 통한 내용의 공개가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인지, 정략적인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민간기구라는 게 구성원에 따라 정치기구로 변질될 수 있고, 내용의 불법 유출 등 보안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적 혼란 등 누가 뒷감당을 하겠냐는 것이다.

대검 관계자는 "지금까지 (테이프 내용의) 보안이 유지되는 것은 검찰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불법 도청 자료를 다수가 열람하도록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장혜수.김종문 기자 <hscha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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