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경제기자의 반성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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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제 전망은 꾸불꾸불한 산길을 백미러만 보면서 운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경제 예측이 그만큼 어렵다는 비유리라. 나 역시 경제기자로서 얼마나 많은 엉터리 글을 썼고, 그릇된 주장을 폈는가를 회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런 엉터리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점만이 어설픈 변명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하이닉스'를 한번 따져보자. 골칫거리 반도체 회사 하이닉스를 하루빨리 팔아 치워야 한다고 얼마나 숱한 경제전문가가 한목소리로 떠들어 댔는가.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매각 과정이나 방법 문제로 토를 달았을 뿐 나 역시 하이닉스 같은 회생 불가능한 부실회사는 조속히 팔아치우는 게 상책이라 확신했었다. 그래야 더 큰 은행의 부실을 막고 국가신용도도 올라간다고 믿었다. 글도 그렇게 썼으며 말도 그렇게 하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의 하이닉스는 어떤가. 은행 관리대상에서 졸업한 것은 물론이고, 8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단다. 흑자 규모도 한두 푼이 아니다. 지난해 흑자가 1조70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내년에도 그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빚 탕감에 시달려 왔던 은행들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희색만면이다. 계속 좋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고 천덕꾸러기 하이닉스가 이 같은 흑자 반전의 드라마를 실현해 보였다는 사실에 이들도 어리둥절해 한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나 자신부터 하이닉스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지만, 적어도 이글을 통해서라도 하이닉스 문제에 대한 오판을 인정하고 독자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러나 칼럼쟁이 하나의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청산이나 매각을 주도했던 정부 사람, 은행 사람들, 그리고 옆에서 훈수를 두던 경제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어찌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과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나. 모두가 당시의 과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으면 좋겠다. 그때는 최선이라 판단했던 정책이 왜 틀려 나갔는지를 놓고 때늦었지만 가칭 '하이닉스 반성회' 같은 연구 모임이라도 하나 만들었으면 더 좋겠다.

돌이켜 보면 김대중 정권 내내 하이닉스는 최대의 골칫거리였으며 무조건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에 팔아버리라는 것이 정부와 금융 당국의 공식 방침이었다. 전략이 따로 없었다. 마이크론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라는 것이 정부 방침의 핵심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하이닉스를 집어던지고 손을 털라는 것이었다.

일정표까지 만들어 놓고 밀어붙이던 청와대.재경부.금융감독원 책임자들도 오늘의 하이닉스를 보면서 참으로 민망한 심정일 것이다. 당시의 외환은행(주거래) 이강원 행장은 하이닉스를 서둘러 처리하라고 앉혀졌고, 따라서 빨리 팔아치우지 못한다고 사방에서 들볶였다. 그 또한 하이닉스의 조속한 처분이 옳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매각 조건과 절차가 너무 불리하게 되어 있으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정부와 감독기관 등에 통사정을 하고 다녔다.

그 사이에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 사이에 하이닉스는 흑자 경영의 기틀을 만들어낸 것이다. 올 2분기 영업이익률로 보면 하이닉스가 플러스 17.4%인 데 반해 하이닉스를 거저 삼키려 했던 마이크론은 마이너스 12.3%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따질 것도 없다. 하이닉스 매각론의 오류는 완전히 판정이 난 셈이다. 하이닉스 주식을 샀던 사람은 대박이 터졌다. 3년 전 2800원 했던 주가가 지금은 2만4000원선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고관대작을 지낸 누구를 만나봐도 자기들이 저지른 정책 과오를 솔직히 시인하고 반성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긴 잘했는데 여건이나 남의 탓으로 떠넘기는 게 보통이다. 언론 또한 그런 걸 끝까지 기록하고 규명하는 노력이 신통찮다.

과거 정권은 그렇다 치고 지금의 노무현 정권으로 말머리를 돌려보자. 현정권은 자신들의 실책을 얼마나 솔직히 시인할까.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따져보나마나다. 노동 정책, 부동산 정책, 균형발전 정책, 교육 정책 등 굵직굵직한 정책에서 저지른 정책 과오들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개혁의 공적이라 자랑할 사람들이다. 누가 잡든 다음 정권이 심각한 부작용들을 수습하느라 무척 고생할 것이다.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