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집권당과 정부가 부추긴 무상보육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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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정 간 불협화음은 실망을 넘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교육부 장관과 여야 간사가 합의한 사안에 대해 여당의 원내 지도부가 이를 뒤집고 교육부 장관을 향해 ‘월권’ 운운하는 걸 보면서 집권세력의 소통부재와 국정운영 능력이 이 정도인가 하는 실망을 거둘 수 없다.

 전말은 이렇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여야 간사인 신성범·김태년 의원은 어제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으로 5600억원을 증액하고 이를 교육부 일반회계 예산으로 확정해 국고에서 지원하기로 구두 합의했다. 5600억원은 당초 교육부가 누리과정 예산으로 책정한 액수다. 김 의원이 합의 내용을 발표할 때만 해도 파행을 빚어온 예산 정국에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여권 내에서 자중지란이 일었다.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원내지도부에 일언반구 상의가 없었고 새누리당은 그러한 합의를 할 의사가 없다”고 선을 긋고 “황우여 장관이 그랬다면 월권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와중에 신 의원은 간사직 사퇴를 밝히는 등 소동을 벌였다.

 여야 간 입장 차이로 차질을 빚어온 예산 심의가 여권의 자중지란으로 더 꼬이게 됐다. 당장 야당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면서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까지 온전한 예산 심의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누리과정 예산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으로 예산 국회의 최대 쟁점이었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사전에 해당 부처 간, 또 당정 간에 치밀한 논의나 의견 조율이 없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니 벌써부터 “정권의 실세인 경제부총리와 사회부총리 간 힘겨루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도는 것 아닌가.

 당정은 앞서도 담뱃세 인상, 김무성 대표의 개헌 발언 등을 둘러싸고 엇박자를 내며 혼선을 자초했다. 이러고도 국민에게 개혁에 동참해 달라고 할 수 있는가. 국민을 설득하려면 집권세력부터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