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은 끝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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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물만큼 귀중한 것도 없다. 기상조건이 그런대로 괜찮은 해는 모르고 넘어가지만 올해처럼 오랜 가뭄이 계속된 해에는 물의 소중함이 한결 절실하게 느껴진다.
지난 달 말 금년농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비는 전국적으로 내렸다. 하지만 그로써 우리의 물걱정이 아주 가신 것은 물론 아니다.
가뭄이 가장 극심했던 경북의 안동댐 등 전국의 6개 다목적댐은 저수량의 격감으로 용수방류와 발전을 전면 중단했으며 대부분의 호수나 저수지도 말라붙은 채 필요한 만큼의 물을 확보치 못하고있다.
이런 형편에서 앞으로 흡족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당장 우리들이 마셔야 할 식수가 달리게 될 뿐 아니라 내년 봄 농사를 걱정해야 할만큼 문제는 심각하다.
건설부가 각 시·도별로 용수비상대책을 세워 전국만의 절수운동을 펴나가기로 한 것은, 따라서 시의에 맞는다.
우리나라의 연중강수량은 1천 1백 40억 t으로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물이 부족한 편은 아니다. 7, 8월의 장마철에 비가 많이 내려 반쯤은 방류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용 가능한 수량은 6백 62억 t이나 되며, 실제로 산업용수나 생활용수로 쓰이는 물은 1백 50억 t에 이르고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지하수 포함량이 3천 6백억 입방m나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지혜를 동원하고 머리를 잘 쓰면 가뭄걱정을 않고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수량은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나라의 수자원 이용체계란 말하자면 이런 몇가지 전제를 놓고 짜여진 것인데 올해의 경우 예년에 비해 강우량이 절반밖에 오지 않는 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강우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데서 생긴 사태가 이처럼 심각하다면 앞으로 기상이변 등으로 강우량이 더 줄어든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가용수자원을 적절히 활용해서 어떠한 기상조건도 극복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며 국민들 또한「물의 귀중함」을 새롭게 인식, 절수운동의 생활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물을『물쓰듯』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농업용수 못지않게 생활용수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인구증가와 도시화의 진척에 따른 불가피한 추세인 것이다. 농촌이건 도시건 물의 귀중함을 재인식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주민일수록 물의 소중함을 헤아려 한방울의 물이라도 아껴쓰는 습성을 길러야겠다.
위생적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해서 식수로서 적당치 않다는 등 수도물에 대한 일부 불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도물이 생산되기까지의 과정이나 변두리 고지대에 사는 주민들의 식수난을 생각한다면 왜 한방울의 물이라도 아껴 써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물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은 시민 개개인의 생활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할 뿐더러 정부차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주요과제의 하나다.
우리는 가뭄이 찾아올 때마다 물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대부분의 물을 헛되이 바다로 흘려 보내왔다. 강우량 모두를 자원으로 이용할 수는 없겠지만 소형 댐을 더 많이 만들고 하수의 관개수로를 개척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물의 효과적인 활용방안을 찾아야겠다.
농사에 지장이 없을 만큼 해갈이 되었다고 해서 안심할 때가 아니다. 거대한 다목적댐의 저수량이 줄어든 것을 보면 금년 가뭄의 심각성을 절감할 수 있다.
가뭄극복은 어떻게 보면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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