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안전체험관 속에만 맴도는 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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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실제와 다른 보라매안전체험관 지하철 체험장(왼쪽)과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 [이상화 기자]
이상화
사회부문 기자

지난주 서울 보라매안전체험관을 찾았다. 세월호 침몰 참사 7개월을 맞아 지하철역의 안전디자인 문제를 취재하고 있을 때였다(본지 11월 17일자 20면). 자연재해와 재난 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체험관은 과연 어떤지 궁금했다.

 지하철 사고 체험관은 지상 2층에서 시작해 지하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실제 크기와 똑같은 전동차 모형과 승강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역과 비슷하게 만든 통로와 개찰구가 있었고, 전동차 문을 수동으로 여는 방법도 익힐 수 있었다. 체험 시작 버튼을 눌렀다. “화재가 발생했으니 신속하게 대피하십시오.” 긴박감이 느껴지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규모만 작은 모형 지하철역이라지만 실제 지하철역과의 차이점들이 다가왔다. 우선 자판기 같은 편의시설이 없었다. 안내 표지판도 꼭 필요한 것들만 있었다. 벽면을 보니 60㎝ 높이에 초록색 띠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승객들이 몸을 숙인 채 이 띠만 보고 탈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실제 지하철역 중엔 이런 띠가 있는 곳이 없었다.

 또 체험관 바닥과 벽면에는 초록색 비상구 표시가 20m 거리에 12개나 붙어 있었다. 기자가 둘러본 지하철역들에는 ‘20m당 1개’라는 소방법 기준에 따라 비상구 표시가 설치돼 있다. 방독면 함도 달랐다. 지하철역의 방독면 함은 덮개를 깨야만 방독면을 꺼낼 수 있었지만 체험관 방독면 함의 경우 손으로 당기면 쉽게 열렸다.

 안전체험관 같은 가상 시설을 통해 재난 상황을 체험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이 안전체험관 속에만 맴돌고 있는 건 정상이 아니다. 모델 하우스나 다름없는 체험관은 안전 중심으로 만들어 놓고, 정작 지하철역은 미관에만 신경을 쓴다면 대체 체험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5일 밤 전남 담양군의 한 펜션에서 불이 나 청년 4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소방당국이 지난해와 재작년 소방시설 점검을 실시했지만 소화기 비치 여부 등만 확인하는 데 그쳤고, 올해는 이마저도 없었다. 공무원들이 수많은 펜션 하나 하나를 철저히 안전점검한다고 해서 칭찬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하철역도 다르지 않다. 안전디자인을 강조하는 것이 광고 수익에도 보탬이 되지 않고, 승강장의 화려함을 더하는 데 역행할 수도 있다.

 안전은 ‘티가 나지 않는 일’이다. 평소엔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을 꼼꼼히 돌아볼 때 안전은 확보될 수 있다. 배가 침몰했다고 배를 긴급점검하고, 펜션에 화재가 났다고 펜션을 단속하는 식의 ‘후행 학습’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 걸까.

이상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