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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 NO … 삼성중·엔지니어링 합병 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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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에 제동이 걸렸다. 제동 페달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이 밟았다. 실적 악화로 사업 재편 필요성이 커진 기업으로선 주주 이익과 미래 대비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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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19일 합병 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애초 다음달 합병 기업을 발족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합병을 하려면 내 주식은 되사가라’고 요청(주식매수청구)한 주주가 예상보다 많았다. 청구 기한이었던 17일까지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청구액은 7063억원에 달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한도(4100억원)를 72%나 초과했다. 최대주주(삼성SDI)와 특수 관계인을 제외한 외부 주주 10명 중 4명(38%)꼴로 합병을 반대해 청구권을 행사한 셈이다. 삼성중공업에 대한 주식매수청구 금액은 9236억원으로 한도(9500억원)에 육박했다. 삼성중공업 측은 “양사가 총 1조6299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주식매수 대금을 지급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이 상태로 합병하면 합병회사의 재무 상황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합병 재추진의 여지는 남겼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향후 합병을 재추진할지 여부를 신중히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 반대가 컸던 것은 실적 악화에 따른 주가 하락 때문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해외 사업 손실로 지난해 1조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적자였다.

이에 따라 1년 전 4만원을 넘었던 삼성중공업 주가는 2만5750원(17일)까지 떨어졌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은 2만7003원이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마찬가지다. 17일 주가가 6만800원으로 매수 청구권 행사 가격(6만5439원)에 4600원가량 밑돈다.

 허문욱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합병에 따른 미래 성과는 불투명한 상황에서 청구권을 행사해 현재 주가 대비 차익을 챙기겠다는 주주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일부에선 삼성 측이 엔지니어링의 가치를 너무 후하게 매겼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양사는 엔지니어링 1주당 중공업 주식 2.36주를 교부할 예정이었다. 전재천 대신증권 연구원은 “합병 계약이 해지되면서 오히려 삼성엔지니어링의 부실이 삼성중공업에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해소됐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다시 한번 입증됐다. 국민연금은 삼성중공업 주식 4.99%(10월 주총 기준),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5.24%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는 지난달 27일 양사의 주총에서 합병안에 대한 표결에 기권해 매수청구권을 확보했다.

반대가 아니라 기권이었는데도 시장에선 이를 국민연금이 두 회사의 합병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해석했다. 증권가에선 국민연금이 삼성중공업에 3000억원, 엔지니어링에는 1000억원 수준의 청구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합병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라 기금 수익이란 측면에서 청구권을 행사했을 뿐”이라며 “청구도 마감 시한 직전에 했기 때문에 다른 투자자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합병 계약 해지의 직접적 요인이 된 엔지니어링의 청구금액 한도 초과의 경우 국민연금이 청구를 하지 않았어도 이미 한도를 초과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개입설’을 부인한 것이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견개진은 양날의 칼과 같다”며 “연금 가입자 이익이 우선이지만 개별 기업의 구체적 경영까지 의사개진을 하면 경영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공업과 엔지니어링을 합쳐 시너지를 내려고 했던 삼성그룹의 사업 구조 개편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삼성그룹은 삼성중공업의 선박 건조 능력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설계 능력을 합쳐 육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종합 플랜트 회사를 만든다는 목표였다. 지난해부터 진행된 제일모직·에버랜드·삼성종합화학·삼성SDI 등에 대한 사업 구조 개편의 연장선이자, 삼성물산 건설 부문 재편을 위한 전 단계로 여겨지기도 했다.

삼성 측은 두 회사 합병으로 2020년 매출을 40조원(현재 25조원)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합병에 제동이 걸리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영훈·김창규 기자

 

◆주식매수청구권=주주가 기업의 중요 결정에 반대해 자기 주식을 되사가도록 기업에 요구하는 권리. 합병, 사업 양도 등 주주 이익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에 적용된다. 주주총회 결의로부터 20일 이내 행사해야 하고, 행사 가격은 이사회 결의 전 1주~2개월간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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