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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기업인들의 활동 실태|기계·운수 등 각계서 우먼·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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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랜 불황으로 억센 기업인들도 휘청거리고 있다.
그러나 비록 「큰손」은 아니지만 사장·감사·이사 등 여러 형태로 기업 경영에 참여, 꿋꿋하게 기업을 이끌고 있는 여성 기업인도 많다.
줄잡아 5백∼6백명으로 추산되는 이들 여성 기업인들은 지난 77년부터는 한국 여성 경제인 협회도 참석,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여성 경제인 협회는 지난 79년9월 회장직을 맡은 이영숙 고려 개발 감사가 2대째 이끌어 오고 있고 최애경 홍대 재단 이사장, 백영자 퀸비 가구 공예 사장이 부회장직을 맡고있다.
2세 여성 경영인으로 신격호 롯데 그룹 회장의 외동딸인 신영자 롯데 쇼핑 영업 이사, 정주영 현대 회장의 외동딸인 정경희씨 등도 의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영숙 회장은 해방 전 한때 여 기자로 활동하다 해방 후 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떠맡게 된 것이 사업에 뛰어든 동기가 됐다. 전후 1인 사장, 1인 사원으로 용역업부터 손을 대며 돈을 모은 그는 57년 20명의 사원을 거느린 북영 건설을 창업, 주로 미8군 공사의 하청을 맡아 건설 업계에서 발판을 굳혀오다 한때 부동산에도 손을 됐고 이후 현 고려 개발 회장인 정천석씨를 만나 결혼하면서 자신의 기업을 흡수 합병시킨 배짱 있는 여성 경영인이다. 현재는 상장 법인인 고려 개발의 대주주로 감사직을 맡고 있다.
동 협회의 부산 지부장을 맡고 있는 허복선 제1기계 감사도 엔지니어 출신 남편과 함께 공동 창업, 사장인 남편을 도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케이스.
이밖에 백영자 퀀비 가구 공예 사장, 김우경 럭키 건업 주식회사 사장 (여성 경제인 협회 감사) 등은 모두 스스로의 힙만으로 각각 가구 제조업, 건자재 생산 판매업에 뛰어 들어 기업을 일으킨 오너 경영인들로 꼽힌다. 럭키 건업 김우경 사장은 지난 77년 창업, 럭키 하이섀시 총판을 맡아 이제는 연간 매출 약 15억원의 기업을 꾸려 가고 있다.
여성으로서 힘든 업종에 뛰어 들어 수준급의 기업을 가꾸어낸 경영인으로는 신진 기계의 박영자 사장과 구백 정기 화물의 송윤진 사장을 들 수 있다. 두 사람 역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기업을 일으킨 맹렬 여사장들이다. 박영자 사장은 65년부터 여성으로선 드물게 보일러 제작에 손을 대 이제는 보일러 제작 업계의 원로급 경영인이 됐다. 자신이 직접 따라다니며 보일러 설치를 감독하고 노하우를 연구해 제품의 질을 높이고 「분수에 맞게 신용을 본위로 하는」 영업 신조로 한번 확보한 고객은 걸대 놓치지 않는다.
현재 부천에 1천2백평 규모의 공장을 갖고 있고 지난해 10억원의 외형을 기록했다.
구백 정기 화물의 송윤진 사장은 4개의 기업군을 거느린 화물 운송 업계의 실력자다. 70년대 초 서울 우유의 운송 용역으로부터 시작, 77년 부산∼대구 노선을 뛰는 한서 교통 정기 화물을 설립한 송 사장은 이후 계속 사업을 확장, 호남 지방을 커버하는 목포 정기 화물을 세우고 이어 지난해 7월 서울∼광주 노선의 구백 정기 화물과 구백 고속을 인수해 이제는 1백40대 정도의 대형 트럭을 굴리는 실력자로 부상했다.
송 사장은 평소 자신의 재산을 뒷날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 여성 경제인 협회의 재력 있는 멤버로는 역시 남편과 함께 가방 제조업을 하고 있는 조순조 부일 공업 주식회사 대표 이사, 호텔 신라와 코리아나 백화점 등에 민예 보석상을 차리고 있는 전희복 영희 물산 사장, 진로통에서 비단 상점을 10년째 경영하고 있는 최미자 삼보 주단 사장, 이순화 신양 전기 이사, 원단 가공 업체인 정화 산업의 박정화 사장, 인쇄업도 겸하고 있는 하숙정 수도 요리 학원 원장, 실크 원단 제조 업체인 동국 실크의 신장자 사장 등이 꼽힌다. 또 도예·실내 장식·음식점·의류 제조업 등을 웬만한 기업의 형태로까지 끌어올린 여성 경영인들로는 두두 패션의 정례준 사장, 매자 패션 김매자 사장, 뉴골든 아동복의 이말생 사장, 롯데 1번가에 도자기 점을 내고 있는 한윤숙 예랑의 집 사장, 봉제 완구 수출 회사인 소예 산업의 이상숙 대표 이사, 이철우 마담 폴라 사장, 패션 업계의 원로 격인 최경자 국제 복장 학원 원장 (여성 경제인 협회 명예 회장) 등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계속되는 불황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고만 로즈 핸드백 이계순 사장, 범진 무역의 최청 사장 등과 같이 비정한 사업 세계의 쓴맛을 맛본 기업인들도 있다.
한편 여성 경제인 협회에는 가입하고 있지 않지만 재력과 사업 수완, 사회적인 영향력 등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굳히고 있는 여성 기업인들도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애경 유지의 장영신 사장이다. 장 사장은 창업주인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이 타계한 후 뒤를 이어 지금까지 11년째 사업 영역을 넓히며 연간 외형 5백억원이 넘는 대기업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부터 전경련의 유일한 여성 이사가 된 그는 또 지난 5월에는 홍일점 제11대 서울상의 상임 위원으로 선출돼 업계에서의 발언권도 행사하고 있다.
또 중소기협중앙회 산하 홍일점 조합 이사장인 양계숙 우성 전산 기업 사장도 빼놓을 수 없다. 양 사장은 처음 한국 복지 부녀회 부설 컴퓨터 연구소를 운영하다 독립, 본격적인 전산 서비스 회사를 차린 전업 케이스로 지난해 8월 설립된 전산업 협동조합 초대 이사장직을 맡았다.
공채 출신 여성 경영인으로는 전화기 코드 메이커인 팔금 공업 주식회사의 강유식 자금 담당 상무가 돋보인다. 강 상무는 15년 전 팔금 공업의 경리 사원으로 입사, 계단을 하나씩 밟아 전문 경인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들 여성 경영인들이 한결같이 꼽고 있는 경영의 요체는 분수에 맞고 신용을 위주로 하는 견실한 영업이며 무리한 사업 확장은 피한다. 또 여성이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지만 관청에 드나들 때나 거래선과 상담을 벌일 때 도리어 일이 수월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수완가들이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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