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정권에 우파 은행장 1년만에 목표 초과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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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식 '좌우 합작'의 산물인 키위뱅크가 출범 1년 만에 거래고객수 목표치를 조기에 달성하는 등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최근 '뉴질랜드인의 은행'을 표방하면서 지난해 4월 출범한 키위뱅크가 1년 만에 거래고객수 12만명을 확보했으며, 올해 말까지 고객수가 2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당초 키위뱅크는 출범 3년 후 고객수 16만명을 목표로 잡았다.

키위뱅크의 설립은 원래 좌익인 동맹당의 주요 선거공약이었다. 뉴질랜드의 5대 시중은행은 모두 외국은행이다.

외국은행들이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매년 15억 뉴질랜드달러(약 8억4천만달러)의 수익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게 동맹당의 불만이었다. 1999년 총선에서 10석을 얻은 동맹당은 집권 국민당을 제치고 제1당으로 떠오른 노동당(49석)과 좌파 연립정권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좌파 연립정부는 7천8백50만 뉴질랜드달러의 공공자금을 투입해 키위뱅크를 세우면서 총선에서 패배한 제임스 볼저 전 총리를 은행장에 임명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중도우파인 볼저는 총리 재임시 국영은행인 뉴질랜드 은행을 민영화하는 등 시장원리에 충실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밀어붙였던 인물이다.

키위뱅크는 기존 거대은행 고객들이 거래은행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저소득층 고객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키위뱅크의 강점은 공기업인 우체국(뉴질랜드 포스트) 망을 활용하는 덕에 기본적으로 저비용 구조인 데다 거대 시중은행들보다 1백여개나 많은 2백85개의 지점을 갖고 있어 고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뉴질랜드를 위한 토종은행'이라는 식으로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 전략도 고객 확보에 한몫을 했다.

그러나 키위뱅크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초기 투자비용 등 때문에 첫해 1천만 뉴질랜드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수수료와 이자율이 낮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키위뱅크와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은행이 등장해 경쟁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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