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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노조시대] 제1부. (3) 길고 과격한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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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1월 14일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두산중공업 정문 앞. 이 회사 근로자도 아닌 민주노총 및 금속노조 소속 노조원 7백여명이 정문을 부수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보름 후에도 다른 회사 노조원들이 또 두산중공업으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경비원과의 몸싸움으로 중상자가 나왔다.

두산중공업의 폭력사태는 이 때뿐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에는 파업기간 중 납기에 맞춰 제품을 출하하려던 회사측과 이를 저지하는 노조원들이 맞붙었다. 생산현장이 폭력으로 아수라장이 된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 8월엔 제주 한라병원에서 병원측이 고용한 1백40여명의 용역경비가 투입돼 농성 노조원을 몰아낸 뒤 병원을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 13명이 다치기도 했다.

국내 파업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노사 대립은 과격하고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날아다니는 파업을 본 주한 외국기업들은 "한국의 노조는 무섭다"고도 한다.

문제는 의견충돌을 대화로 풀기보다는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노조는 처음부터 불법을 각오하고 과격행동으로 나오고 사측은 용역경비를 동원한다. '아르바이트 구사대'로도 불리는 용역경비는 폭력사태를 더욱 키우기도 한다. 이때 쌓인 감정이 갈등을 깊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 노동계 인사는 "물리력을 앞세운 사측과 불법파업을 각오한 노조가 맞붙으면 파업이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태가 이쯤 되면 노사가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 노사가 교섭의 당사자로서 아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 사측은 공권력 투입에, 노측은 정부 중재에 기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회사가 거덜날 때까지 지루한 파업이 이어진다. '상생(相生)'해야 할 노사가 '공멸(共滅)'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셈이다.

게다가 파업이 일단 장기화하면 수습과정에서도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무노동 무임금'원칙이 쉽게 깨진다.

지난해 6개월이 넘도록 파업과 직장폐쇄가 이어진 D공업은 노조원 1인당 평균 2백70만원을 파업기간 중의 생계비로 지급했고 K의료원도 파업기간 중 임금의 45%를 지급했다.

K의료원의 경우 의사와 비노조원이 "일을 하지 않아도 절반에 가까운 봉급을 주면 파업기간 내내 고생한 사람은 뭐냐"며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 노조는 파업기간 중 폭력을 휘둘러 벌금형을 선고받은 노조원을 대신해 회사가 8백여만원의 벌금을 내라고 요구했다. 또 원정시위를 나왔다 다친 타회사 소속 상급단체 노조원의 진료비까지 회사가 전액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사측은 파업을 서둘러 끝내기 위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인다. 이에 따라 노조의 도덕적 해이가 구조적으로 심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사정위의 한 공익위원은 "파업을 오래 해도 임금 손해가 없다는 것을 노조 스스로 알고 있으므로 쉽게 파업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노조 내부의 역학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장기파업은 노조 내부의 파벌문제 탓이 크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에는 노조가 여러 파벌로 갈려 있다"며 "서로 경쟁을 하다 보니 노조가 강성이 되고 파업도 과격해진다"고 말했다.

집행부가 투쟁의 강도를 조절하기가 어려워지는 때도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조합원들의 요구를 의식한 집행부가 선명성을 보여주려는 경우가 있다"며 "이 때 말이 통하던 사람들도 갑자기 강경으로 돌변하곤 한다"고 말했다.

과격한 파업에 대한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일단 새 정부는 공권력 개입을 가급적 피한다는 원칙이다. 파업에 대한 사법대응의 수위도 상당 폭 낮출 방침이다. 상대적으로'약자'인 노조에 정당한 쟁의활동의 폭을 넓혀준다는 취지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사는 노사문제를 공안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다 사용자쪽에 우호적이다"며 노동문제에 대한 사법적 대응에 회의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공권력의 직무유기'라고까지 비판하며 '무노동 무임금'원칙의 관철과 불법파업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조의 파업만능주의를 부추겨 기업경영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장기대책으로 사측의 투명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당장 실현하지는 못하더라도 사측의 투명경영은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투명하게 기업 한다는 데야 노조가 대책 없이 덤빌 리가 있겠습니까."

노동운동가 출신의 청와대 고위 정책참모의 말이다. 기업에 대한 불신감을 엿볼 수 있는 이 말은 앞으로 사측에 대한 정부의 주문이 보다 많아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 중앙일보 특별취재팀

김정수 전문기자 (경제연구소), 남윤호 .김기찬.하현옥 기자(이상 정책사회부).강병철 기자(산업부)

◆다음회에는 '비정규직은 勞.勞문제?'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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