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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벼락치기’출제 기간 늘리고 교수도 검토 참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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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청에서 열린 대입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가 정시모집 지원 참고표를 보고 있다. 올해 수능은 출제 문항 오류와 변별력 하락으로 수험생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문항에서 오류가 난 데 이어 올해도 오류가 반복되자 수능 출제 방식의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출제 기간과 출제·검토위원 수를 늘리고 다양한 인력으로 출제·검토위원단을 구성해 실질적인 검증시스템을 갖추자고 제안했다. ‘EBS 교재 연계 출제’를 중단하고 ‘문제은행식 출제’ ‘수능 자격고사화’를 검토하자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교육학자·교사들은 “수능 출제 기간을 늘리고 출제진부터 보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단기간에 소수 인원으로 수십여 개 과목을 출제하는 ‘벼락치기’가 오류 반복의 일차적인 원인이란 이유에서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출제진은 한 달간 합숙하지만 문제지 인쇄·운송에 걸리는 시간을 빼면 실제 문항 개발은 15일 안에 끝난다”며 “이 정도론 완벽한 출제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 수능 출제위원은 316명, 검토위원은 167명이었다. 국어 A·B형, 수학 A·B형, 영어를 비롯해 과학탐구 8개 과목, 사회탐구 10개 과목, 직업탐구 5개 과목, 제2외국어·한문 9개 과목을 출제하고 검토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전직 EBS 강사는 “지난해 오류가 생긴 세계지리 과목은 출제위원이 4명에 그쳤다”며 “인원을 늘릴 수 없다면 과목이라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지리 오류 이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타 영역·과목 출제진도 검토에 참여하는 ‘영역 간 검토’를 추가하는 등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오류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 ‘교수가 출제하고 교사는 검토하는’ 관행 탓이 크다. 이성권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대표(대진고 교사)는 “현행 시스템에선 출제를 주도하는 교수가 고집을 피우면 어떻게 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교사의 역할을 강화하는 한편 검토위원에 교수·전문연구자를 포함하고, 출제위원·검토위원 간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시스템 손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BS 70% 연계 출제’도 도마에 올랐다. 오류 논란을 빚은 지난해 세계지리 8번, 올해 영어 25번, 생명과학Ⅱ 8번, 생활과윤리 7번 문항은 모두 EBS 연계 문항이었다. 서울의 한 고교 영어교사는 “EBS 교재의 내용이라 출제진이 대강 보고 넘긴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5월 EBS는 국어·수학·사회탐구에서 한 건씩 오류를 정정하고 오·탈자 13개를 고쳤다. 2010년엔 수능을 석 달 앞두고 영어교재에서 오류·오탈자 64개가 발견돼 정답 책자를 새로 만들었다.

 김종우 진로진학교사협의회장(양재고 교사)은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평가한다는 시험이 EBS 교재만 달달 외우게 한다”며 “공교육 정상화엔 도움이 안 되고 오류만 양산하는 EBS 연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능 출제에 정부 정책을 지나치게 반영하는 행태도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상대평가라는 특성을 무시한 과도한 정책에 따라 ‘만점자 1%’ ‘쉬운 영어 수능’ 등을 강행하다 보니 부작용이 거듭된다”(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것이다.

 수능을 미국 SAT와 유사한 문제은행식 출제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비영리기관의 전문 연구진이 연중 평가 문항을 개발·검증하고 출제위원은 이 중에서 고르는 방식이 오류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시경쟁이 과열된 국내에선 기출문제 중심의 문제풀이 교육이 성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이만기 유웨이중앙 평가이사)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수능을 절대평가·자격고사로 개편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 수능은 ‘한 방’에 인생을 걸고, 교과서·EBS 교재 속의 지식, ‘실수하지 않기’ 연습에 매달리게 한다”며 “도입 취지대로 기초학력, 논리적 사고만을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소재 대학 한 입학처장은 “그럴 경우 대학에선 신입생 변별을 위해 대학별 고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데, 공정 시비, 사교육 부담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천인성·윤석만 기자

교수 출제, 교사 검토 관행 바꿔야
논란 빚은 3개 문항 EBS 교재 내용
‘70% 연계 출제’도 도마에 올라
수능 자격고사 전환 등 대안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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