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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고발장 내용에 도청 부분 없어 깜짝 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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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참여연대의 (불법 도청사건) 고발장을 뒤늦게 봤다. 그런데 불법 도청 부분에 대한 고발내용이 없어 깜짝 놀랐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27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시각과 사건 처리의 방향에 대해 밝혔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불법 도청이지, 그로 인해 파생된 도청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 천 장관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수사 초점도 불법 도청 행위 자체와 테이프의 조작 여부에 맞춰져야 한다고 천 장관은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불법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근거로 지난 25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홍석현 주미 대사 등 20여 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서울 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하지만 불법 도청 행위는 고발 내용에서 빠졌다.

천 장관은 "이번 사건은 국가기관이 세금을 받아 도청한 것이다.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도청 테이프의) 내용에 포함된 범죄사실 가능성보다 덜 중요하다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도청 주체였던 안기부는) 국가 권력기구이고 직무의 성질상 통제가 취약한 기관이다. 흔히 하는 말로 음지에서 일하는 기관인데 무차별로 도청했고, (다른 사람들이)그걸 가지고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하고 협박도 했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보면 매우 심각한 사태다"고도 했다.

천 장관은 이번 사건의 수사와 관련해 테이프의 조작 여부를 밝히는 게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천 장관은 "테이프가 완전히 조작이라고 나올 경우 (도청 테이프의)내용에 대한 수사는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그렇기 때문에 (수사에)일정한 순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1990년대 초반 자신이 직접 겪었던 도청의 경험을 소개한 천 장관은 도청의 또 다른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도청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고 (그 내용이)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보고되는 점"이라며 "그것이 비밀정보의 치명적인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도청에 대해서는 반론의 기회가 없다"며 "고의적인 음해나 진실과 거리가 먼 내용임에도 반론도 못하는 사이 (도청 피해자는 자신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천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현재도 도청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검찰에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장관의 발언은 전날(26일) "국가기관이 개인생활을 침범한 불법 도청이 문제며, 테이프 내용 역시 불법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김종빈 검찰총장의 생각과 같은 맥락이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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