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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논술 시대] 上. 학교서 더 잘 가르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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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논술'이 학생.학부모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통합교과형 논술이 도입되는 등 대입에서 논술고사가 강화되는 데 따른 현상이다. 논술 사교육 시장은 이미 들썩이고 있다. 교육당국은 이에 맞서 "학교에서 논술교육을 시키겠다"며 논술지도 교사 연수 등 대응에 나선 상태다.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의 논술지도가 효과를 거둬 사교육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지를 집중 점검한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롯데캐슬 광고 문구)

"이 광고에 나타난 현대인의 사고 형태를 소유와 존재의 문제와 관련지어 밝혀내고 자기 생각을 쓰시오."

6월 광주 금호고 2학년의 방과 후 논술 심화반 수업. 5~6월 두 달 동안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주제 도서로 정해 논술수업을 진행 중인 김미정 교사가 제시한 논제에 학생들은 다양한 글을 내놨다. "긍정한다. 소유가 존재를 대변한다. 그래서 난 공부한다." "물질 위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학교에선 일 주일 두 번의 논술 수업 중 한 시간은 이처럼 주제 관련 자료를 읽고 글쓰기를 한다. 다른 시간엔 쓴 글에 대한 첨삭과 발표, 토론을 한다. 이 학교는 논술지도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지난해 1월 국어.사회과 교사 20명 전원을 대상으로 논술 전문강사를 초빙해 일주일간 하루 다섯 시간씩 집중적으로 논술 연수를 했다.

◆ 논술과 교양을 위한 '테마'수업 운영=부산 개금고 서진관 교사는 21일 동서대에서 진행된 부산 지역 논술지도 교사 연수에서 특강을 통해 "학원보다 학교에서 논술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날 제시한 논술지도의 방법은 '테마'수업이다. 개금고는 2학기부터 서 교사의 주도로 이 같은 테마 수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우선 학기 중에는 매주 한 번씩 방과 후 각 교과 교사가 돌아가면서 특정 주제로 강의를 하는 테마 강좌를 운영한다.

수능 이후에는 하루에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소그룹별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4교시 동안 교사의 강의-학생의 주제 발표-학생 간 토론-논술문 작성-완성된 원고 비교.첨삭 순으로 수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 '팀 티칭'으로 통합형 논술에 대비=서울고는 보충수업 시간에 논술강좌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국어 교사가 중심이 되지만 통합적인 배경지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과학과 교사도 함께 참여해 공동지도를 한다. 구자송 연구부장교사는 "20시간짜리 강좌의 경우 과학교사가 5~10시간 정도 필요한 내용과 지식을 제공하고 실제로 읽고 쓰게 하는 작업은 국어과에서 담당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5월부터 방과 후 논술 수업을 진행 중인 부산 내성고도 국어.영어.사회 교사 중심으로 논술지도팀을 구성해 강의 내용과 지도방법을 협의하는 등 팀 티칭을 하고 있다. 문창민 교사는 "배경지식을 쌓기 위한 교양강의를 하고 실제 논술을 작성케 한 뒤 잘 쓴 글과 못 쓴 글을 비교하면서 총평을 한다"고 말했다.

◆ 논술지도 교사 양성이 관건=서울고 허공범 교사는 "논술을 학교에서 제대로 지도하려면 무엇보다 지도교사가 많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에 대한 교육.연수가 이뤄져야 하며 적절한 교재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논술 전문강사로 활동 중인 한효석 전 부천고 교사는 "과도기적으로는 일부 교사를 대상으로 180시간 이상의 심화연수를 시킨 뒤 부전공으로 논술지도를 전담케 하고, 장기적으로는 사범대의 교육과정에 '논술 지도'를 넣어 졸업 후 전공에 상관없이 자기 담당 교과에서 논술지도를 할 수 있는 교사를 배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남중.한애란 기자

명지고 글쓰기 교육
교수 특강, 매일 1시간 쓰기 교육
"학원 다닐 필요 없어 그만뒀어요"

"내가 존재하는 이유, 내가 학교 다니는 이유, 생각한다는 것과 되짚어 생각한다는 것…."

13일 오전 서울 명지고의 서태선(17.2년)양은 이런 글을 썼다. 직전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의 '중요한 것과 더 중요한 것'이란 특강을 듣고서다. 이 학교 1, 2학년생 전원은 14, 15일에도 정 교수의 '피하기와 견디기''산문적 사실과 시적 진실'이란 강연을 듣고 50분간 글을 쓰는 논술대회를 치렀다.

명지고는 지난해부터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학년생부터 국어.사회.과학 과목 수업시간 중 한 시간씩을 할애해 쓰기 교육을 해왔다. 올 2학기부터는 음악.미술.체육 등 전 교과목으로 쓰기 교육을 확대했다. 명지고는 이를 위해 자체 작문 교재(A4 용지 100쪽 분량)를 만들었다. 교재는 7권으로 이뤄진 미국 글쓰기 교과서를 참고했다.

박성수 교장은 "쓰기는 교육의 기본"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글쓰기라면 흔히 국어과 식의 글쓰기를 떠올리는데 그건 잘못"이라며 "순수하게 과학적 논리나 데이터로 쓰는 과학 쓰기나 사회 문제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목표지향적이고 가치판단적인 '책'(책문) 형태의 쓰기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장은 "입시용만은 아니다"며 "그러나 논술에도 대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학교 2학년 오지연(17)양은 "지난해 두세 달 대치동 논술학원을 다니다 그만뒀다"며 "논술 하면 사교육을 떠올리지만 (우린)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 박윤모(17)군은 "글쓰기와 말하기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비속어를 안 쓰게 됐다"며 "휴대전화 문자를 보낼 때도 '너 뭐햐'라고 하지 않고 제대로 다 쓴다"고 했다.

고정애 기자

서울 명지고의 1학년 2학기 쓰기 문제의 예

"이 비석 밑에 디오판토스가 잠들어 있다. 일생의 6분의 1은 소년시대였고, 그 뒤 12분의 1이 지나 턱수염이 났고 다시 7분의 1이 지나자 결혼했다. 5년 후에 낳은 아들은 아버지 생애의 절반을 살았고 아버지는 슬픔 속에 지내다 아들이 죽은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위 글은 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묘비명으로 그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자기 생애를 가정, 자기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 구할 수 있는 묘비명을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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