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법 도청에 대한 대통령 인식이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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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 사건과 관련, 국정원의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제 오전의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에서다. 노 대통령은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도청을 자행한 것은 과거의 일이나 부끄럽고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정부는 불법 행위를 철저히 밝히고 유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아직 해야 할 조치가 있다면 즉시 단호히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국가기관의 불법 행위"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 같은 대통령의 인식이 옳다고 판단한다. 불법적인 행위로 인해 취득한 정보가 탈법적 또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공표되고 그 사회적 파장 속에서 도청이라는 불법 행위가 덮어진다면 사회정의는 요원하다. 특히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될 경우 불법을 제어할 사회적 장치와 규범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도.감청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된 취지도 바로 그 때문이며 도.감청 자료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욱이 노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불법 과정 속에 공개된 정보와 불법을 통해 취득했지만 공개되지 않은 정보의 형평성도 문제 될 소지가 있다. 이미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안기부 도청팀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대해 광범위한 도청을 했으며 수천 개의 녹음 테이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차후에 나머지 테이프들이 공개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으며 그때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반복해 치러야 한다면 사회는 극도의 혼란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도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공론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녹음 테이프가 공개된 이상 녹음된 내용의 진위는 가려져야 하나 어떠한 경우에도 이중 삼중의 처벌적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위를 가리는 과정에서도 초법적.탈법적 조사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정부나 언론이나 그리고 이번 사건을 지켜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다 냉정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