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 <46>『성경 이야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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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는 세계명작동화전집에 『성경 이야기』도 있었는데 요즘 친구들이 보는 전집 구성은 어떤지 모르겠다. 종교와 상관없이 그리스로마 신화와 성경의 내용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서양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약 2000여 년 전, 팔레스타인 지방은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압제에 신음하던 유대인들은 예수가 민족 해방운동을 이끌기를 기대했다. 한편 기존 유대교 율법에 집착하던 사람들은 예수가 못마땅했다. 그들은 예수를 곤경에 빠트릴 기회를 엿보다가 물었다.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고. 어떤 대답을 해도 예수는 정치적으로 곤란하게 된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로마의 식민 지배를 인정하는 것,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에 저항하라고 부추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세금 낼 때 쓰는 은화를 가져 오라고 한 후 물었다. 이 은화에 새겨진 사람이 누구냐고. 사람들이 답했다. 가이사라고.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쳐라.” 이 멋진 대답에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이 말은 이후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경우에 인용하는 명언이 되었다. 한편 이 대목을 읽던 어린 나는 궁금했다. 가이사는 누구일까? 왜 동전에 사람 얼굴이 새겨지게 된 것일까?

일러스트=홍주연

가이사는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인인 카이사르를 말한다. 개화기에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가이사로 표기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로마 제국의 기틀을 닦은 그의 전체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카이사르가 공화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한 후 로마 제국의 1대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양자로서, 2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양자가 되어 카이사르라는 성을 썼다. 이후 로마 황제들은 카이사르 집안과 혈연이 있든 없든 모두 카이사르라고 불리게 됐다. 카이사르가 황제를 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로마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도 카이사르를 황제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영어의 시저(Caesar), 독일의 카이저(Kaiser), 러시아의 차르(Czar)를 예로 들 수 있다.

카이사르는 국립조폐소를 만들어 금화·은화·동전을 주조하며 각 주화에 자신의 얼굴을 새기도록 했다. 이전까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신을 새겼던 로마 화폐는 그 때부터 지배자의 옆 얼굴을 새기게 됐다. 카이사르 이후의 황제들도 각각 자신의 얼굴을 새긴 주화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은화에 새겨진 인물이 ‘가이사’ 즉 카이사르라 불린 것은 진짜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여서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위의 일화에 나오는 은화는 로마제국의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데나리온 은화라고 한다. 예수가 생존하던 시대는 2대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렸지만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1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데나리온 은화를 사용했다고 한다.

주화에 새겨진 카이사르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예스’, 뒷면이 나오면 ‘노’라고 여기는 풍습이 그에게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를 존경하던 로마 시민들은 중요한 문제가 생기면 그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던져 결정했다. 카이사르의 얼굴이 있는 앞면이 나오면 황제가 찬성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는 카이사르 대신 이순신 장군에게 묻고 있다.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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