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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쌍용차 정리해고는 정당, 긴박한 경영상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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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법원 3부는 13일 쌍용차 해고 근로자 김모씨 등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2009년 당시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급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왼쪽 셋째)이 이날 공판이 끝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근로기준법 24조에 규정된 ‘정리해고’ 요건이다. 2009년 5월 파업 이후 쌍용자동차 회사 측과 해고 근로자들이 ‘긴박한 필요’에 대한 평가를 놓고 2000일 넘게 대립해 온 상황에서 대법원이 정리해고 필요성을 인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3일 쌍용차 해고 근로자 김모(40)씨 등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2009년 당시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급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된다”며 “이와 다르게 판단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하거나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2009년 2월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했던 쌍용차는 같은 해 5월 회생계획안을 짜면서 전체 인력의 37%에 달하는 2646명의 정리해고를 결정했다. 당시 회사 측은 자동차 판매대수가 급감한 데다 2008년에 시작된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경영상의 어려움이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갔다고 제시했다. 이에 반발한 노조는 즉각 파업에 들어갔다. 77일간 이어진 파업 후 회사 측은 해고 규모를 축소해 총 165명을 정리해고하기로 했다.

 해고된 근로자들이 이듬해 소송을 내면서 전개된 소송전에서 정리해고가 필요한 긴박한 상황이었는지 여부를 두고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렸다. 1심 법원은 “시장 점유율이 급감한 상태에서 국내외 금융위기 여파로 인한 유동성 부족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정리해고 말고는 없었다”며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정리해고를 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지난 2월 1심 판결을 뒤집고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 회사가 망할 만큼 구조적·계속적 위기였다고 볼 수 없었고 ▶해고를 회피하려는 노력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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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 다시 바뀌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워크아웃으로 신 차종 개발을 위한 연구와 투자가 중단된 점이 주된 잣대가 됐다. 상하이자동차에 인수된 2005년 후에도 새로운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외에 다른 주력 차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SUV 매출마저 세제혜택 축소 등의 영향으로 급감한 만큼 회사가 구조적 위기에 처한 것이라 봤다. 재판부는 “외부 상황으로 인한 일시적 위기라고 볼 수 없다”며 “정리해고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에서 부당하다고 본 쌍용차의 2008년 회계연도 재무제표와 이에 대한 검토보고서에 대한 판단도 뒤집었다. 안진회계법인은 2008년 11월 작성한 쌍용차 감사보고서에서 공장 등 유형자산에 대해 “앞으로 벌어들일 매출의 가치가 장부에 기재된 해당 자산의 가치보다 현저히 낮다”며 이를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쌍용차는 당기순손실 규모를 늘린 재무제표를 작성했고 삼정KPMG는 이를 인용해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검토보고서를 냈다. 항소심은 “2013년까지 어떤 새로운 차도 출시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가치를 평가한 것으로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다소 보수적으로 이뤄졌다 해도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대법원은 “정리해고 인력 규모 산정에 문제가 있다”는 근로자들의 주장과 “해고회피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항소심 판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요한 인력 규모에 대한 판단은 경영 판단의 문제에 속하며 ▶회사가 해고를 막기 위해 부분휴업 등의 조치를 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 논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정리해고 요건을 ‘경영 악화로 현재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사실상 폐업 상황에 몰려야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보다 유연한 기준으로 정리해고를 인정함으로써 법 개정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쌍용자동차는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쌍용차 측은 판결 직후 “당시 인력 구조조정이 파산 위기에 직면한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경영 정상화를 통해 퇴직자 복직 문제에 대처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이 회사 정무영 상무는 “앞으로 생산 물량이 늘어나고 인력 수요가 확보되는 대로 고용 문제에 충실하게 대처할 것”이라며 “지난해 무급 휴직자 전원에 대해 복직 조치를 시행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쌍용차 지부 측은 증거를 보완해 법정 다툼을 이어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노조 측 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는 “납득할 수 없고 잔인하며 무책임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글=김기찬 선임기자, 이상재·박민제·노진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근로자 손 들어줬던 2심 파기
손실 규모 늘린 재무제표 인정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 영향 줄 듯
민주노총 지부 “납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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