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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조작에 농락당한 '토지 소유현황' 분석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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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1.29 대 1.75.

뉴욕 타임스와 한국 주요 신문들이 한 기사를 쓸 때 사용하는 취재원 수의 비율이다. 2001년 9월 1면에 실린 기사들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한국 신문 가운데는 경향신문.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신문을 포함시켰다. 중앙일보의 1면 기사당 평균 취재원 수는 1.73이었다. 중앙일보와 뉴욕 타임스를 비교하면 뉴욕 타임스가 중앙일보보다 기사당 6.5배 정도 많은 취재원을 사용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대단히 의미있는 비교치다. 단순화해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저널리즘과 중앙일보의 차이가 그만큼 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결론에는 한 가지 큰 고려사항이 빠졌다. 뉴욕 타임스는 대부분 1면 기사가 점프해 뒷면으로 계속된다. 기사 길이가 중앙일보보다 3배쯤 길다는 뜻이다. 따라서 문장당 취재원 수나 문단당 취재원 수를 계산하면 격차는 줄어든다.

그러나 이렇게 숫자를 보정해 위안을 삼는다 해도 기사는 무엇이고,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생각에 두 신문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가릴 수는 없다. 역시 조금 극단적이지만 분석대상 가운데 가장 많은 취재원을 사용한 기사를 보니 뉴욕 타임스는 한 기사에 23개의 취재원이 사용된 경우가 있었다. 중앙일보는 5개를 쓴 기사가 1개였고, 그 이상 취재원을 활용한 사례는 없었다.

최근 추세를 보기 위해 지난주 5일치 중앙일보를 분석했다. 기사당 평균 취재원 수에서는 2001년과 차이가 없었다. 사진을 포함해 하루 평균 5개 정도의 기사가 1면에 실렸다. 기사당 취재원 수는 평균 1.52개로 조사됐다. 지난 4년여 사이 중앙일보가 기사를 생산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았다는 의미다.

눈에 띄는 변화도 있었다. 휴가길 교통사고 위험지역을 분석하는 기사 등 심층기획기사들이 1면에 배치된 사실이다. 이러한 기사들은 취재원 수도 다른 기사보다 많았다. 지난주 1면 기사 가운데 가장 많은 취재원을 사용한 경우는 11일 톱기사다. 북핵 문제를 다룬 이 기사는 서울.워싱턴.베이징(北京)에서 모두 5명의 기자가 동원됐고, 인용한 취재원은 8명이었다. 나머지 기사들은 대부분 취재원이 하나였다. 기자가 한 사람을 접촉해 기사를 썼다는 뜻이다. 이는 취재원의 선의에 기자와 신문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좋은 예가 16일 "상위 1%가 전국 사유지 절반 차지"라는 기사다. 행정자치부 자료에만 의지해 작성한 이 기사는 통계조작 기법에 신문이 농락당한 느낌이 강하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토지 소유 실태는 개인이 아니라 가구 단위로 통계를 내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중앙일보는 한국 신문의 보도관행을 앞장서 개혁해 왔다. 가판을 폐지하고 섹션을 도입했으며, 탐사보도를 강화하는 등 최고의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개혁은 외관적인 요소에 치우친 느낌이다. 이제는 근본문제인 기사의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올리는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락하는 신문의 신뢰도를 회복하기 어렵다. 미국 언론인들은 좋은 기사가 되려면, 적어도 4개의 취재원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