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기 KT배 왕위전' 이창호, 대세점을 선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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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39기 KT배 왕위전'
제4보(54~72)
● . 왕 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옥득진 2단

기러기가 날아가는 듯한 백△들을 보며 김인 9단이 "대가(大家)의 풍모이기는 하나…"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백△들은 승부를 초월한 듯 대담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과연 실속이 있느냐, 그게 문제다. 54로 막자 55로 지켜 이곳 흑은 공격 한 번 당하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 옥득진 2단은 신중하게 판을 살피고 있다. 참 벙벙해서 어디가 큰지 감이 안 오는 바둑이다. 우하 백진은 몇 집이나 될 것이며 좌변 흑은 또 어느 선에서 철책이 쳐질까. 일단 56으로 상변부터 두었다. 귀를 죄어들어가는 맛을 백은 노리고 있다. 이창호 9단은 57을 하나 선수하더니 59로 붕 날아갔다. 영화당의 검토실에선 이 수에 탄성이 터져나온다. 이곳이 대세의 요충이었다. 56, 58은 너무 느렸다.

옥득진 2단은 60의 노림수에 과도히 집착했던 것일까. 60에 '참고도 1' 흑 1로 받는 것은 욕심이 과한 수. 백 2, 4가 듣게 되면 A의 붙임과 연계된 백 6의 침투로 인해 흑 전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61로 슬쩍 피했고 그것으로 더 이상은 없다. 백이 B로 넘어가면 흑은 C로 살면 된다.

59가 왜 요소인가 하면 이곳이 흑의 대군과 백의 대군이 마주치는 접경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흑이 먼저 차지했기 때문에 백은 일단 경계에서 한발 밀리게 됐다. 62는 그래도 멋진 수라고 한다.

'참고도 2' 흑 1로 밀고나와도 8까지 깨끗하게 틀어막을 수 있다. 이창호 9단도 63과 65의 맥점을 구사하며 백 모양에 흠집을 만들었는데 고수의 자태가 역력한 행마의 공방전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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