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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신유·은사의 치병집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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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 더러운 마귀야, 예수의 피로 명하노니 썩 물러가라. 쉿.―』
『빠빠파랏다 땃따라랄리…』(방언)
흔히 성령의 권능으로 마귀를 내쫓아 병 고치는 것을 특징으로 내세우는 일부교회와 기도원들이 신유·은사집회, 안수·안찰기도의 형식을 빌어 행하는 기독교 치병행위의 한 장면이다.
이같은 치병집회는 개별교회에서 요일별 정기집회나 매일 연속집회로 행해지기도 하고 『모든 병든 자여, ○○○목사의 신유로 고침을 받으라』는 광고와 함께 전국순회부흥회로까지 확산되기도 한다.
김광일 교수(한양대·정신의학)가 지난해 연구를 위해 직접 참석, 관찰한 서울시내 한 교회의 치병안수기도 실태―.
『주여, 할렐루야, 주시옵소서.』(기도·수백차례 반복)
『사발달라 사발달라 까막살랄라…』(방언) 『가슴이 뜨거워지시는 분 손드시오. 예수님의 은사로 병이 나았읍니다. 믿습니까.』(목사의 설교) (환자신도들 모두 손들고 아멘을 연속 외친다. 이어 방언을 연발하면서 환자들의 머리·등·가슴 등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귀신을 쫓는 목사의 안수기도―. 안수받은 환자들은 누워 뒹굴거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기독교 치병집회에는 으례 불치병을 신유의 안수를 받아 고쳤다는 실례(?)를 제시하는 「간증」이 펼쳐진다.
치병안찰기도의 구타로 늑골관절·뇌진탕 등 중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되거나 심지어 사망까지 하는 예가 종종 사회문제화 되기도 한다.
또 기독교치병 금식기도원에서 고단위영양식이 필요한 간염·결핵·암환자들을 굶김으로써 위독한 상태가 돼 병원에 응급 입원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김광일 교수).
어쨌든 신흥성령운동 교회중에는 목사의 치병으로 유명해져 신도수가 팽창하고 카리스마적 권위를 향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한국기독교 현실의 한 단면이다.
우선 기독교가 성서기록에 따라 성령과 믿음의 힘으로 병 고침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더우기 종교현상이란 과학이론으로 따질 수 없는 하나의 체험적 소산이라고 볼 때 기독교의 기적적인 치병에 크게 이질감을 느끼는 게 잘못일지도 모른다. 또 현대의학의 한계를 넘는 정신병이나 불치병에 신앙의 치유적 효과가 충분히 인정되기도 한다.
『믿는 사람은 표징이 따르게 될 것인데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중략)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마가복음16장 17∼18절)
기독교 치병자(목사·전도사·장로·집사)들이 치병의 성서적 근거로 내세우는 귀절이다. 그래서 성령을 귀신 쫓고 병 고치는데 연결시켜 축사치병하는 일을 극히 성서적이라고 주장한다.
또 많은 성서속의 치병기록을 제시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의 3분의2는 마귀를 쫓아 병을 고치신 일』이라고 한다.
문제는 성서의 신유기록을 빗대 모든 치병이 성서적·기독교적이라는 과장과 신유만이 성령받은 증거라는데 있다.
김 교수는 『성서귀절을 인용, 샤머니즘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나 아전인수격일 때가 많고 수많은 성서귀절 중 지엽적인 부분만을 확대, 성서의 전부인양 강조한다』는 비판과 함께 연구결과 『기독교 치병집단의 질병관이 한국샤머니즘의 축사치병과 다를 게 없다는 견해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신유·축사·금식기도 등의 방법으로 신유·은사집회를 통한 「집단치료」와 안수기도를 통한 「개인치료」로 병을 고치는 일부 기독교 치병은 인간질병의 원인을 ▲죄의 결과 ▲마귀(귀신)의 역사 ▲하느님의 저주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귀신을 내쫓는 것이 바로 병을 고치는 것이라는 것―.
복음의 자유와 해방을 병으로부터의 육신해방과 일치시켜 병 고치는 것을 복음의 진수라고 강조하는 게 한국신흥성령운동의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서광선 박사)
마귀강조로 일관하는 비기독교적 설교와 질병의 근원인 귀신에게 인격·의지·지적능력이 있어 대화가 가능하고 말로 추방할 수 있다는 일부교회의 무속적 치병론―.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 믿고, 마귀에 붙들리지 않고, 병 고치는 것으로 요약되는 오늘의 일부 교회신앙을 기독론과 성령의 역사를 곡해한 「신앙의 오류」라고 비판한다. 물론 기독교의 샤머니즘적 치병은 기도로 병을 고치겠다는 신도들의 반응에서부터 튀어나와 이를 해결하려다 성서귀절을 뜯어 맞추는 무당의 축귀현상으로까지 발전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정통적인 기독교교단의 일부교회에서까지 방언과 치병의 기적을 행하고 서울시내만도 5백여곳의 기독교 치병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병을 고친다고 장담하는 신흥성령운동의 치병기적은 『▲암시와 집단최면 ▲환기 ▲황홀상태 등으로 일시적 퇴영현상을 초래, 심한 착각의 허구로 몰아넣는 행위다』는 주장이다. (김광일 교수)
여기서 과거의 한 예를 회상해볼 수 있다. 일부 치병집단의 행로가 축사치병의 교세확장―치부―기업경영―호화생활―사생활 문란―사회지탄―멸망의 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심지어는 이들 말기에 간부간에 암투가 심해져 살인극을 빚기까지 했었다.
이같은 치병행위는 개인의 자기통찰력과 사회통찰력을 마비시키고 사회비판정신 및 참여의식을 흐리게 하며 기독교의 예언자적 역사의식을 마비시킬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육체적 치병을 기독교구원의 전부인양 비약하는 일부 신흥성령운동교회는 『약만 믿지 말고 믿음으로 병을 극복하라. 그러나 약 먹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야고보서5장)』는 이중적인 성서의 치병관을 한번 되새겨 봐야할 것 같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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