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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5) 제78화 YWCA 60년(1) - 창설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 여자기독교 청년회는
참 귀하고 신성하다
십삼도 흩어져 활동하는
우리 회원의 모임일세
일천만 여성의 생명길을
개척할 자 그 누군가
희생봉사 십자아래
단결한 청년회원일세
앞길에 어려움 많아도
주님 우리 인도하시니
진심 합심 분투하고
담대히 전진하세
아! 만세 만세
반도의 새 생명 되는
우리 청년회 회원들
분골쇄신 할 때까지
하나님 뜻을 받읍시다.
이것은 열 사람이 모이든, 백 사람이 모이든 항상 힘차게, 감격스럽게 불렀던 YWCA 회가였다.
62년, 40주년 때까지 이 회가는 전국YWCA가 다 함께 우렁차게 전국각지 구석구석에서 불렀던 회가였다.
이 회가에 명시된 말들은 YWCA가 창설될 때 창단멤버들이 가졌던 생각―『여성들아 단결하여 하나님 뜻을 받아 희생봉사의 정신아래 이 나라 여성들의 살길을 찾아주겠다』는 굳은 결의를 명백히 해주는 뜻깊은 가사였다. 이는 또 YWCA의 목적―『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게 하여 온 인류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됨을 인정하게 하고 구세주이신 예수의 교훈을 자기생활에 실천하게 함으로써 평화와 정의의 사회를 건설함을 목적으로 한다』를 뒷받침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치욕의 한일합방이후 12년, 이 민족의 장거 3·1운동이 있은 지 3년째 되던 22년4월 그 깊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이 민족이 살수 있는 길은 여성도 조직을 가지고 여성들의 능력을 개발해야 하겠다는 뜻에서 YWCA는 태동하게 되었다.
YWCA 창설자중 한 분인 김필례씨는 그가 한국에도 YWCA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데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1908년 동경에 공부하러갔을 때 처음 반년동안은 주로 어학(영어·일어)공부만을 했다. 반년이면 충분히 말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고 번역이나 통역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방학에도 집에 안 가기로 하고 방학동안 있을 데를 찾은 것이 동경YWCA가 경영하는 기숙사였다. 그곳에 머무르면서 YWCA가 과연 좋은 기관이라는 것을 알았고 우리 한국에도 YWCA를 꼭 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씨가 경험한 바로는 일본의 다른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친절함을 YWCA에서 경험했다는 것이다. 또 모든 시설이 그렇게 잘 되어있어서 기거가 편안하고 질서가 잡혀져있더라는 것이다.
그 기숙사에는 시골에서 올라와 직장을 가지고있는 여성들과 학생들이 수용되어있었고 기독교정신을 생활화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이 기관은 세계적이고 국제적으로 조직이 되어있어 다른 많은 나라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고, 교류할 수 있다는 데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김씨가 한국에도 그 언젠가는 YWCA가 창설되어 무지와 무식 속에 허덕이고 있는 여성들의 눈을 뜨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당연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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