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가족 “그럼 그 많은 아이들 누가 희생시켰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11일 오후 1시50분 광주지법 201호 법정. 형사11부 임정엽 부장판사가 세월호 이준석(69) 선장에 대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피고 이준석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순간 재판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판사들을 바라보던 이 선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믿어지지 않아 귀를 기울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검사의 표정은 굳었다. 방청석을 메운 유가족들에게선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곤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상으로 재판을 마친다”는 재판장의 말이 나온 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은 격한 반응을 토해 냈다. “판사님 이건 아니잖아요”라는 부르짖음에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대한민국에 희망은 없다”는 외침도 들렸다. 흥분한 유족과 제지하는 법원 직원들 사이에 실랑이도 벌어졌다. 이 선장을 비롯한 피고인들은 가족들의 원성을 뒤로한 채 빠른 걸음으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재판이 끝난 뒤 유족들은 광주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적어도 총책임자인 이 선장에게 극형을 내려주길 바랐는데 기대가 무너졌다”고 했다. 희생된 단원고 2학년 최진혁군의 어머니(43)는 “재판부가 엄마·아빠의 마음을 외면했다”며 울먹였다. 재판을 지켜본 단원고 생존학생의 아버지 김모(43)씨는 “참담하다. 아이들한테 할 말이 없어졌다”고 했다.

 재판이 생중계된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유족들은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니, 그럼 그 많은 아이들은 누가 희생시켰다는 거냐”며 오열했다. 유족들은 재판 중계가 끝난 뒤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렸다. 믿기지 않는 듯 꺼진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보는 여성도 있었다.

 일반 시민들 반응은 엇갈렸다. 이선호(46·자영업·경기도 구리시)씨는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이 적절한 구호조치를 않고 먼저 배에서 도망 나왔기 때문에 수백 명이 사망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살인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국민정서와 어긋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명희(38·여·회사원·서울 노원구)씨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전체가 반성해야 하는 문제”라며 “선원들을 무조건 강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박주희 사회실장은 “세월호 침몰 과정 모의실험 등 다양한 부분을 고려해 심리를 진행해 온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앞으로 꾸려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이번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채우지 못한 부분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안산=최경호·윤호진 기자, 장혁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