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구실 내세운 PLO 소탕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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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기구(PLO) 거점에 대한 공중폭격에 이어 6일 단행된 이스라엘의 남부레바논 전면침공은 시간이 흐를수록 전선이 확대되고 지중해의 미6함대가 긴급 출동하는가 하면 이란이 PLO 및 시리아에 대한 군사원조를 선언하는 등 중동정세는 또다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78년 3월 대규모 침공이후 4년만에 단행된 이스라엘의 이번 남부레바논에 대한 전면침공은 지난 4월말 시나이반도의 반환이후 유일하게 남아있던 국경불안지역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선제공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면공격은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피격된 데 대한 보복이라지만 그것은 「기다려온 공격」의 구실을 찾았을 뿐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육해공을 동원한 전면침공은 보복의 성격을 넘어선 것으로 『갈릴리의 평화작전』이라는 작전 명칭이 시사해 주듯이 화해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의 근거지를 철저히 무력화시켜 북쪽 국경지역을 안정시키겠다는 뜻이 더욱 짙다.
회교권의 단결을 가장 경계해 온 이스라엘로서는 이란-이라크전이 끝나 회교권의 관심이 팔레스타인 문제로 돌려지면 앞으로 있을 캠프데이비드협정(78년)의 제2단계작업인 이집트와의 팔레스타인 자치협상에서 유리할 게 하나도 없다.
따라서 회교권이 안정되기 전에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협상하는데 유리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입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런던주재 이스라엘 대사의 피격사건은 이스라엘에 좋은 구실을 준 셈이다.
이스라엘은 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79년 중동평화조약체결, 82년 4월 시나이반도 반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중동평화작업을 끝마쳐 비록 이집트만 상대로 한 「반쪽 평화」였지만 남쪽 국경지대의 안전장치를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시나이반도의 반환 직전에 있었던 요르단강 서안 소요사태의 무력진압, 작년 12월 중순 세계의 이목이 폴란드에 집중됐을 때 단행한 골란고원 합병조치 등은 시나이반도 반환이후에 있을지도 모를 국경지대의 불안요소를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경너머의 PL0군사기지는 계속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고 더우기 이들은 3만명에 달하는 레바논 주재 시리아군의 지원을 받아온 터였다. 시리아군은 75∼76년 레바논내전이후 평화유지를 위한 아랍 저지군(ADF) 명목으로 레바논 영내에 주둔해 오고있다.
이번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면침공이 과거의 침공과 다른 양상이 있다면 바로 시리아군과의 정면 충돌이다. 과거에는 PLO기지에 대한 공격에 제한됐었고 시리아와의 충돌도 전투기끼리의 공중전, 그러고 시리아 미사일에 의한 이스라엘 항공기 격추 등이 전부였다.
이스라엘 정부가 침공직후 이번 작전이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이스라엘 국경에 대한 포격거리 밖으로 몰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리아군과의 정면충돌은 이번 사태를 의외의 방향으로 끌고 갈지 모를 변수가 되고있다.
또 7천명의 유엔평화유지군 주둔지역을 힘으로 돌파했다는 점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베긴」수상의 말대로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땅을 한치라도 탐내는 것이 아닐지라도 이 지역이 중동평화의 열쇠를 쥐고있는 민감한 지역인 만큼 이러한 양상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소련은 이번 이스라엘 침공사태를 「제5차 중동전」이라 규정짓고 미국의 음모가 개입됐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또 소련은 분쟁의 포괄적이고 공정한 해결을 위해 분쟁당사국이참여하는 국제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이 같은 소련의 태도는 미국이 만들어 놓은 캠프데이비드 협정체제를 깨뜨리고 분쟁당사자가 되고있는 친소시리아를 통해 중동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겠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강경 일변도의 「베긴」수상 정부의 정책스타일도 이번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지난 5월 중순 크녜세트에서 가부동수로 겨우 야당연합의 불신임안을 부결시킬 정도로 「베긴」수상의 연립정부는 국내 정치적으로 위태위태하다. 이러한 국내정치불안은 「베긴」정부로 하여금 대아랍 강경 노선을 계속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여하튼 이번 사태로 중동은 또다시 불안의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 고삐가 어디까지 계속되느냐가 열쇠가 되겠지만 시리아가 무력 전면대결로 나오면 소련의 말대로 제5차 중동전으로 확대될 위험성이 없지 않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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