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이은 은행의 부정|제도상 허점도 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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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은행의 예금·인출관리제도에 허점이 많다.
은행원은 아직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고객이 맡긴 돈을 장기간 유용 또는 횡령할 수가 있다.
각종 사회사업으로 칭송을 받던 전 조흥은행 명동지점차장 김상기씨(39)마저 86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받은 조흥은행은 관련직원 22명을 무더기로 대기발령을 하는 한편 보완책을 찾느라 부산하다.
부실담보대출·대출커미션 등 잘 알려진 은행원의 비위에도 제도적 미비점을 이용, 은행원이 자금을 유용하는 방법은 많다.
이들은 크게 나눠 예금주의 돈과 은행자체의 돈을 빼 먹는 2가지 수법으로 나뉜다. 은행이 부채와 자산을 표시하는 대차대조표로 모든 계정을 끝내는 점을 악용,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쉽게 들통이 안 나고 장기간 자금을 유용할 수 있다.
그 뒤에 이 돈을 채워 넣으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범죄가 많다.

<정기예금>
고객이 출처가 선명치 않은 돈을 은행에 정기예금 할 경우 △창구에 현금 제출→직원의 예금증서작성→직원의 입금전표 작성→담당대리 검인(직인 및 명판)→예금증서 환급의 절차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창구직원·대리가 돈을 술쩍 할 수 있다.
대리는 창구직원과 상호감시·견제기능을 갖고 있지만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무시하고 친한 예금주로부터 돈을 직접 받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백지예금증서를 작성 ,예금층서는 예금주에게 돌려주고 돈은 은행에 입금시키는 대신 자기가 유용할 수 있다. 예금증서에는 대리의 명판·직인만 찍히기 때문에 창구직원과 공모하지 않고도 가능하다.
또 이 경우 입금전표를 작성안 할 것이기 때문에 은행대차대조표에도 이상이 없어 정기예금 만기일까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대티는 이 동안 유용자금으로 사채놀이를 해 돈을 불린 뒤 예금만기일 때 예금주에게 원금·이자를 돌려주면 범행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다. 김상기 씨가 바로 이 방법을 썼다.
정기예금의 경우 예금증서에는 반드시 대리의 날인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창구직원은 대리와 공모하지 않는 한 예금액을 유용하기는 어렵지만 대리가 자리를 비운사이 슬쩍 날인을 하면 가능하다.

<정기적금>
창구직원이 처음에는 전표도 작성하고 통장도 제대로 만들어 준 뒤 두 번째 불입금부터 통장에만 기입하고 불입금을 은행에 넣지 않고 유용할 수 있다. 만기일까지는 아무도 창구직원의 범행을 눈치 챌 수가 없다. 아무리 결산을 해봐야 장부상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온라인이기 때문에 범행이 어려워졌으나 기계자체를 오프라인(Offline)으로 놓고 통장에만. 찍기 때문에 원부에 입금기록이 안돼 범행이 가능하다.
대리의 경우 통장을 만지는 창구직원과 짜지 않으면 어려우나 통강에 입금액을 표시하는 순간 원본에 자동적으로 입금액이 기록되는 온라인대신 수동식 인자기로 집에서도 통장을 만들 수 있어 친한 고객이 믿고 맡길 때 얼마든지 예금액을 유용할 수 있다.
예금 및 인출의 감독만 할뿐 작업은 실제 하지 않는 차장급 이상도 이 같은 방법으로 범행이 가능하다.

<보통예금>
창구직원이 예금액을 받아 인자기의 키를 오프 라인에 놓고 찍은 통장을 고객에게 주고 돈은 자기가 챙기는 방법을 쓴다. 그러나 이 경우 예금주가 언제 찾으러 올지 모르기 때문에 쉽게 들통이 날 염려가 있다.
대리는 직접 기계조작을 못하도록 되어 있으나 직원이 퇴근한 뒤 통장조작을 하면 범행이 가능하다.

<인출부정>
대리급 이상 직원이 친지들을 권유, 직접 돈을 받아 예금한 경우 통장 또는 인감이 없어도 돈을 빼낼 수가 있다.
김상기씨도 이 방법을 사용했다.
예금유치 때 받은 인감으로 몰래 백지예금 청구서에 날인을 해놓았다가 통장없이 예금 청구서만으로 돈을 찾아 쓴다.
물론 창구직원은 『통장이 없다』고 인출을 거부할 수 있지만 직원은 관행상 『통장은 나중에 고치겠다』는 차장의 지시대로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
예금주가 통장만 맡겼을 경우에도 차장이 『나중에 인감을 받아줄테니 우선 돈을 빼내라』고 직원에게 지시하면 직원은 예금액을 인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은행의 관행이라는 것.

<전금>
창구직원이 심심치않게 이용하는 수법이다.
전금이라는 것은 A지점이 B지점으로 돈을 보냈다는 것인데 창구직원은 오지 않은 돈을 온 것처럼 속여 돈을 빼내는 것이다.
이 경우 전표가 오기도하고 전화로 금액·영업소·수취인·전금 번호 등을 전해주기도 하는데 담당직원이 전화가 온 것처럼 전표를 꾸며 돈을 빼내간다. 전화 전금의 경우 담당직원은 반드시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하나 바쁘다 보면 잊는 수도 있어 사기꾼에게 당하기도 한다는 것.
물론 창구직원은 돈을 빼내준 뒤 환 보고표를 작성, 본점과 연결된 컴퓨터에 입력해야하나 이것을 생략하면 상당기간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유용할 수 있다.
또 환 보고표를 실제 작성해 컴퓨터에 입력한다해도 대차대조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본점에서 발견하는데는 1개월쯤 걸리고 조사기간도 l개월 정도 걸리므로 2개월간은 자금을 유용할 수 있다. 창구직원이 이때쯤 유용한 돈을 은행에 넣으면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역환>
창구직원이 자주 이용하는 것.
역환이란 A지검에서 돈을 먼저 지급하고 B지점에 이 돈을 청구하는 것인데 대차대조표의 대부분에 B지점, 차 부분에 보통예금통장을 만들면 대차대조표가 맞으므로 이를 이용한다.
창구직원은 이렇게 만든 보통예금통장으로 C지점에 가서 돈을 찾으면 된다.
이때도 역환 통지서를 B지점에 보내거나 환 보고표를 작성 컴퓨터에 입력하지 않는 한 발각이 되지 않는다. <이석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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