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결혼 앞에서 망설이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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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처음 보았을 때 그는 30대 초반의 핸섬한 남자였다. 주변에 그를 눈여겨보는 또래 여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그는 우아하고 지적인 엄마와 남달리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엄마와 외출하여 영화를 관람했고, 엄마와 팔짱 끼고 산책하며 대화하는 일을 즐겼다. 그는 그 모든 행동을 효도라 여기는 듯했다. 물론 그도 몇 명의 여자를 사귀었지만 그의 연애는 늘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여자 보는 기준이 높기 때문이라 짐작하면서 엄마 같은 여자를 찾는 건 포기했다고 말했다. 처음 본 이후 10년 이상 지난 지금, 그는 여전히 노총각이다.

  우리 젊은이들의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성인 남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나이가 늦춰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젊은이들의 사고가 변화한 탓인 듯도 하다. 가정을 이뤄 유전자를 남기는 일이 생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정부가 쏟아내는 유인책에 속지 않는다. 20년 전쯤에는 여자들이 결혼제도의 불평등함을 거론하며 결혼을 거부하는 분위기였다면, 요즈음은 남자들이 결혼제도 안에 있는 책임과 의무를 부담스러워한다.

 그런 표면적인 이유들 배면에는 또 다른 심리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성장기에 부모로부터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부여받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했던 남자의 내면에는 결혼을 부담스러워하는 무의식이 형성된다. 특히 젊은 엄마들은 아들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성향을 많이 보인다. 어린 아들을 붙잡고 엄마를 사랑하느냐고 확인하고, 백화점에서 원피스를 몸에 대보이며 “엄마 예뻐?” 하고 묻는다. 아들의 여자친구에 대해 캐물으며 은근한 질투심을 표현하고, 부재하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요청한다. 가사 노동 심부름부터 엄마를 지켜달라는 무거운 요구까지. 심지어 어린 아들을 붙잡고 외로움과 슬픔을 하소연하면서 “엄마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라고 말한다.

 의존적 엄마와 상호 작용하면서 자란 아들은 정작 본인이 결혼해야 할 때가 되면 이미 결혼생활에 지친 듯한 심정이 된다. 여자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내비치면 놀란 듯 뒷걸음질친다. 엄마를 향해 표현하지 못한 부정적 감정들이 무의식적으로 여자친구를 향해 표출되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그런 젊은이들을 어른 되기 거부하는 피터 팬 같다고 비난하는 기성세대들이 없지 않다. 바로 그들이 자녀를 어린 시절부터 심리적으로 착취하여 성장하지 못하도록 만든 당사자들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