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 이겨도 미국에겐 큰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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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포클랜드의 영유권 분쟁을 놓고 영국과 아르헨티나 양국은 지난 17년 동안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두 당사국간의 해결이 안되자 미국정부가 「헤이그」 국무장관을 중재자로 내세워 이견조정을 꾀했으나 역시 불발로 끝났다. 그 뒤를 이어 제3국인 페루가 다시 중재인으로 나섰지만 이 노력도 허사로 돌아갔고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유엔의 중재노력도 일단 좌초되고 말았다.
미국의 ABC-TV는 23일 『두 분쟁 당사국간의 협상도 안되고 미국·페루·유엔의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이상 이제 마지막 남은 해결책은 오직 하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부 미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가볍게 단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초강대국의 고압적인 자세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포클랜드 사태 때문에 미국이 치러야 할 현실적인 댓가는 상당히 클 것이라는데에 「레이건」 행정부의 고민이 크다.
그것은 이번 사태로 반미감정이 확대될 소지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과 포클랜드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많은 중남미국가들의 군비경쟁무드를 촉진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수도 있다는 우려다.
「레이건」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포클랜드 사태가 어떻게 결말이 나든지간에 아르헨티나는 앞으로 핵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핵무기개발에 열을 올릴 경우 국경을 마주 대고 있는 또 다른 대국 브라질이 상당한「심리적 압박」을 받을 것이 뻔하며, 브라질까지 핵전쟁에 뛰어든다면 핵무기 확산을 억제하려는 워싱턴의 기본 정책은 큰 후퇴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단 핵무기뿐만 아니라 다른 군소 라틴 아메리카국가들의 재래식 무기 경쟁도 포클랜드사태를 계기로 더욱 가열될 것이라는 게 「레이건」 행정부의 분석이다.
왜냐하면 이들 국가들은 포클랜드 사태를 계기로 『유사시를 대비해서 고도의 군사장비를 갖추는 것만이 최선의 자위책』이라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현재 중남미 각국간에는 서로간에 얽히고 설킨 영토분쟁이 수두룩한데 포클랜드 사태의 시작과 결말의 과정에서 중남미국가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군비경쟁 분위기는 중남미 국가의 군사비를 억제하고 그 돈을 국민들의 복지에 쓰도록 유도하던 미국의 대 라틴 아메리카 정책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것을 뜻하기로 한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미국의 타격은 적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영국편을 듦으로써 쿠바에 대항해서 라틴아메리카 세력을 한데 규합하려던 「레이건」 행정부의 구상도 차질을 빚게되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소련이 군비증강을 원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후견인으로 들어서려 할 공산도 크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이제 중남미 사람들은 「앵그로-아메리컨-유럽인」과 라틴인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냉혹한 현실을 파악하게 됐다.
포클랜드사태가 어느 쪽 승리로 끝나든간에 계속 미국의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워싱턴=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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