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고위장교가 ‘로비 통로’ … 무명업체 3년 새 10건 납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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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검찰의 방위산업계(방산) 비리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문홍성)가 수사 중인 통영함 군사장비 납품 비리의 핵심 고리인 김모(61·해사 29기) 전 대령이 체포되면서다. 검찰은 방위사업체와 현역 장교 간의 유착 과정에서 다리 역할을 한 군 간부 출신 방산 로비스트가 군 장성급 인사들에게도 접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김 전 대령은 2000년대 초반 방위사업청의 전신인 해군 조함단 사업처장을 지냈다. 해사 3년 후배인 황기철(58·해사 32기) 해군참모총장이 1~2년 뒤 사업처장을 맡아 세종대왕함급(KDX-Ⅲ) 한국형 구축함 건조사업을 담당할 정도로 해군 함정건조사업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다. 김 전 대령은 이후 대형 무기중개업체 해군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겨 각종 해군 무기체계 도입사업에 관여해 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군사장비 납품업체인 미국 해켄코 강모(45·구속) 대표가 김 전 대령에게 후배 방사청 장교들에 대한 로비를 의뢰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사실 미국 뉴저지에 있는 해켄코는 직원 10명 안팎의 전자부품 납품업체로 2009년 당시 한국 방산납품 실적이 전혀 없었다. 검찰 조사 결과 김 전 대령은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본부에서 통영함·소해함 건조사업의 실무 책임자고 장비 구매담당 장교였던 최모(46·구속) 전 중령에게 강 대표를 소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음파탐지기(소나) 납품계약을 따내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한다. 실제 김 전 대령에게 로비를 의뢰한 뒤 2009년 말부터 2012년까지 강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가 탐색구조함인 통영함과 기뢰제거함인 소해함의 소나, 무인탐사정(ROV), 기뢰 제거 소해장비 등 10건, 1억9177만 달러(약 2000여억원)어치의 납품계약을 따냈다.

 검찰은 또 김 전 대령이 해켄코의 소나 납품계약 당시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최종 결재를 했던 황 참모총장에게도 계약 성사를 청탁했는지 여부도 조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황 총장은 구속된 최 전 중령과 오모(57·구속) 전 대령이 해당 업체가 선정되도록 시험평가 서류 등 공문서를 위조한 사실을 모른 채 결재만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일단 강 대표로부터 로비자금 명목으로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로 김 전 대령에 대해 이르면 6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군 검찰과 합동수사본부를 꾸리는 방안을 포함해 방산비리 수사를 확대키로 했다. 대검찰청 고위 관계자는 “방위산업체와 현역 장교 간 유착 비리의 근원을 도려낼 수 있도록 다각도로 수사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검 합동수사본부가 만들어지면 장성급을 포함한 각종 무기체계 및 방산물자 도입사업에서 육·해·공군 현역 장교들에 대한 전면 수사가 가능해진다. 검찰이 방산비리 수사를 확대하는 것은 2012년 9월 진수식까지 했던 통영함이 핵심 장비불량으로 2년2개월째 실전 배치가 안 되는 등 방산비리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산·군납 비리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히 척결해서 그 뿌리를 뽑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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