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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자연, 그 비밀] 종로에 나타나는 멧돼지, 호리병 같은 도로·울타리 갇혀 못 돌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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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달 29일 오후 9시14분쯤 서울 종로구 홍지동 주택가에 멧돼지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주민 신고가 종로소방서에 접수됐다. 20분 뒤 이번에는 종로구 구기동 K빌라 인근에서도 멧돼지 신고가 들어왔다. 거리로 봐서 서로 다른 두 마리로 판단됐다.

소방관들이 급히 현장에 출동했지만 한밤중이어서 포획에는 실패했다. 서울 도심의 멧돼지 출현이 갈수록 늘고 있다. 올 들어 3일까지 종로소방서에 접수된 멧돼지 신고는 모두 56건으로 지난해 전체 건수(50건)를 넘어섰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지만 11월 교미 시기를 맞아 소방관들은 더욱 긴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산국립공원 내에 150~200마리의 멧돼지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 1.9~2.5마리 수준이다. 전국 시·도별로 조사된 0.8~9.9마리(평균 4.2마리)와 비교하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도심 출몰이 잦은 이유는 뭘까.

종로소방서 신영119센터의 김관호(46) 주임은 “종로구 지역은 북한산국립공원에다 북악산까지 끼고 있어 멧돼지 출몰이 잦다”고 말했다. 종로구의 구기동·평창동·부암동 주택가는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한산(백운대)에서 시작된 능선은 문수봉에서 갈라져 한 줄기는 비봉·향로봉을 지나 구기터널 쪽으로 뻗어 내리고, 또 다른 한 줄기는 보현봉·형제봉을 지나 북악터널로 이어진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박사는 “멧돼지들이 구기터널 위를 지나 상명대 쪽으로, 북악터널을 지나 성균관대 쪽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산 주변에서는 멧돼지 보기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2002년께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동물을 잡아들이는 ‘유해조수 구제사업’이 시작되면서 경기도 의정부·고양 쪽 멧돼지들이 사냥개에 쫓겨 북한산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산줄기를 따라 북악산길 주변까지 한 번 내려온 멧돼지들은 호리병처럼 도로·울타리에 둘러싸인 지형 여건 탓에 쉽게 되돌아가지도 못한다. 영역 다툼에서 밀려난 멧돼지들이 주택가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고, 산속 들개와 다툼을 벌이다 쫓기기도 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지난해와 올해 도토리가 풍년이 들어 새끼가 많이 태어났는데, 내년 이후 먹이가 부족해지면 도심 출몰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지기 때문이다. 먹이가 부족하면 행동영역이 더 넓어지고 민가나 농경지로 내려올 확률이 커진다.

환경부는 총·포획틀 이용과 함께 북악터널 등 도심 진입 주요 이동로에 울타리를 설치해 멧돼지를 차단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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