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 높은 식생활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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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식생활개선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지금까지 정부차원의 식생활개선운동은 그때 그때의 식량절약 운동이나 혼식운동에 그쳤을 뿐 우리의 식생활을 어떻게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족한 민간기구는 식량자원의 효율적 사용과 국민영양의 증진이라는 장기적 안목에서 국민들이 호응할 수 있는 식생활 패턴을 제시하는 일이 중요하다.
식생활개선운동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식량절약의 문제다. 해마다 막대한 양의 외미 도입으로 밥상을 채워야 하는 우리의 실정으로 식량증산과 절약은 중대한 과제다. 특히 전통적인 쌀 편식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우리의 식생활관습 때문에 식량절약은 곧 쌀의 대체식품이월 감자와 보리소비의 촉진으로 연결되며 정부는 이를 위해 지금까지도 대 국민홍보를 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당혹하는 것은 감자와 보리를 어떻게 조리해 먹어야 할지 그 방법을 모른다는 점에 있다. 적어도 감자나 보리가 주식의 자리에 오르려면 쌀밥을 짓는 것과 같은 일반화한 조리방법이 국민에게 보급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식생활개선운동이 당면하는 구체적인 첫 번째 문턱은 다양한 식량자원을 사용하는 식품과 식단의 개발 내지 교육에 있다 하겠다.
사실 우리가 먹을 음식은 쌀이나 감자, 보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밀가루음식은 국민 대다수의 입맛에 정착됐다. 또 밀가루음식이 정착되기 훨씬 이전에 우리 선 조들은 철에 따라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 술기를 지녔다. 향토에 따라, 가풍에 따라 우리의 식단은 조금씩의 변화를 보여 세계 여느 나라 못지 않게 다양한 식생활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불행히도 이 전통은 사회적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일반 가정주부에게 전승되지 못했다. 우리의 식생활은 이내 단조로운 미식위주로 전락해 버려 해마다 쌀 파동을 일으키는 원인의 하나가 됐다.
결국 오늘날 식생활개선운동의 급선무는 우선 전통식품의 조리기술을 재현하는데 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된 식량자원을 가지고 우리 선 조들이 어떻게 다양한 식생활문화를 이룩했는지 그 비결을 다시 찾아내자는 것이다. 이 같은 운동은 경제생활이 어느 정도 원활해 진 이 시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울러 식량자원의 절약이 어느 때보다도 시급해진 상황이 더욱 필요성을 재촉한다 하겠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의 지혜가 요구된다. 다양한 식량자원을 사용하는 전통적 식단을 연구, 보급시켜야 된다는 얘기다. 그것은 우선 교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 중-고 가정교과서에 커리라이스나 하이라이스 만드는 법은 소상하게 나와 있어도 쌀밥을 맛있게 짓고 국을 제대로 끓이는 방법은 없는 풍토에서 지금은 생소해진 전통식품의 조리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식생활개선은 궁극적으로 각 가정의 부엌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결국 이것은 주부나 예비주부들에 대한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식단의 기초적인 조리방법부티 익히고 전문가들이 재현한 전통식품의 조리기술을 익히면 비로소 식생활개선의 틀이 잡힐 것이다.
전문가들이 연구해 낸 새로운 식단이 일부 식당에 선보이는 것도 식생활개선교육의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당국은 이를 위해 요식 업소의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 식생활개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불결하고 낭비적인 식단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지면 식생활개선교육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모처럼 민간주도로 설립된 식생활개선 추진위원회가 제구실을 다하길 바라며 식생활개선이 그 어떠한 정치구호 못지 않게 중요한 일임을 강조해 둔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먹을 수 있는 중국음식도 장개석 총통에 의해 비로소 기본이 통일되었고 일본음식도 명치유신이후에 오늘과 같은 패턴이 확립된 점을 생각할 때 우리도 지금이야말로 격조 높은 식생활 문화를 이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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