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핵 해결 안 서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미국이 북한 핵문제 대응을 장기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상원 세출위 외교분과 청문회에서 "북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또다른 회담이 필요한 건지,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 게 나은지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다"며 "하지만 서두르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일본 등 동맹국들과 모든 것을 다 검토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월 장관은 또 "북한은 국민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경제가 마비돼 있는데도 국가재원을 핵개발에 사용하고 있다"며 "북한의 핵개발은 우리를 겁주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쉬운 건 북한이지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백악관의 애리 플라이셔 대변인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그런 분위기를 보여줬다.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그는 기자들이 "유엔이 핵문제에 개입하면 북한은 전쟁의 전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고 말하자 "북한이 그런 식으로 얘기한 게 어디 한두번이냐"고 대꾸했다.

플라이셔 대변인은 "북한은 똑같은 얘기를 1994년에도 했다"며 "자극적인 수사를 동원하는 건 북한이 해온 행태"라고 지적했다.

백악관과 국무부의 반응을 종합하면 미국의 기본 입장은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베이징 회담에서 "우리는 핵을 갖고 있고 그걸 배치하거나 외부에 넘길 수도 있다"라고 협박했지만 조급해 하거나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반응에는 배경이 있다. 파월 장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 연료봉을 전부 재처리했다는데 우리 정보로는 확인이 안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미국은 북한이 향후 회담에서 더 많은 걸 얻어내기 위해 핵문제를 부풀리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은 "북한과의 대화는 말리지 않겠지만 결국 북핵 문제는 유엔을 통한 경제제재로 갈 수밖에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파월 장관의 발언이나 백악관의 성명이 큰 틀에서는 외교적 해결을 여전히 지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강경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이 같은 강경파의 입장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