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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본부는 4시간 17분 뒤에야 보고 받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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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의령=임시취재반】의령경찰서 총기난사사건은 주민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사건발생 1시간50분 후에 도경에 보고됐고 치안본부에는 이보다 훨씬 늦어 우 순경이 56명의 주민을 사살하고 상황이 끝난 27일 상오 1시47분(사건발생 후 4시간17분)에 보고된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사건발생시간에는 궁류지서의 직원4명 중 지서장과 차석이 온종일 지서를 비워놓고 부곡온천에 놀러갔다 돌아오던 길이었고 우 순경은 범행 전에 경비전화를 절단, 사전에 대비했던 계획범행 이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궁류지역 방위병과 민방위체제는 연락망이 마비, 손을 못썼고 의령경찰서 최재윤 서장은 밤늦도록 술자리에 어울려 주민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기동타격대의 늑장출동과 상부보고를 제대로 못했던 것으로 치안본부 조사결과 밝혀졌다.

<늑장보고>
경찰에 따르면 첫 발생시간은 9시30분.
의령서에 보고된 것은 경찰이 아닌 평화통일자문위원인 이출수 씨(51)가 밤 10시34분에 행정전화로 처음 신고했다. 이 때문에 의령경찰서 37명의 기동타격대는 사건발생 1시간20분 뒤인 10시50분쯤에야 출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우 순경이 토곡리 4명, 압곡리 6명, 운계리 18명 등 28명을 살해한 뒤 평촌리로 잠입, 또다른 살육난동을 벌여 상황이 끝난 상태였다.
궁류지서 안승섭 순경이 경비전화로 의령서에 4명 사망을 처음 보고한 것은 이보다 훨씬 뒤인 27일0시20분으로 사건이 발생한지 무려 2시간50분이 지난 후였고 사망자 숫자도 10분의1도 안되는 4명이었다.
의령경찰서가 우 순경 사건을 경남도경에 보고한 것도 이 씨의 신고를 받고 타격대가 출동한 뒤 30분이 지난 밤 11시20분쯤. 보고내용은『궁류지서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1명 사망』이었다.
이때는 우 순경이 평촌리에서 21명을 추가로 사살한 뒤였다.
경남도경은 경남도경대로『1명 사망』의 의령경찰서 보고를 받고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1시간여를 허비했다.
27일 0시20분쯤 궁류지서 안승섭 순경의 『4명 사살』이란 보고를 의령경찰서로부터 받은 경남도경은 상오 1시30분 처음으로 도경수사과장과 정보과장이 사고현장을 향해 떠났다.
치안본부에 우 순경 사건을 첫 보고한 것은 27일 상오 1시47분. 사건발생 4시간17분 후였다.
치안본부가 『4명 사살 후 난동계속』이란 보고를 받고 이를 간부들에게 통보하고있을 때인 새벽 2시쯤 우 순경은 모두 52명의 주민을 사살하고 평촌리 서인수씨(69) 집에 들어가 가족들을 위협, 막 인질극을 벌이던 때.
경남도경국가에 의해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은 이보다 30분 뒤인 새벽 2시30분이었고 이때에야 마산경찰서에서 기동대가 출동했다(의령경찰서 타격대는 우 순경의 위치를 알면서도 접근을 하지 못했다).
곧이어 진주·함안·창영·합천 등 인접지역에까지 비상망이 쳐진 것은 새벽 3시30분쯤.
그러나 마산과 진주의 기동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우 순경이 자폭으로 무차별 살육극의 막을 내린 훨씬 뒤였다.
첫 보고의 늑장원인은 사건당일 지서장 허창순 경사와 차석 김진우 경장이 부곡온천으로 놀러가고 없었고 낮 근무 조이던 안승섭 순경도 이날 밤9시 술 취한 우 순경에게 근무를 맡긴 채 집으로 들어갔기 때문.
사건발생 전 이 지서에는 우 순경과 방위범 박상찬(23) 김해군(22) 성석현(22)씨 등 4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지서장 허 경사가 이날 부곡에서 지서로 돌아온 것은 밤 9시40분쯤. 방위병들로부터 우 순경의 광란을 대충 들은 허 경사는 우 순경 뒤를 7백여m쯤 추적, 붙잡으려다 우 순경이 총을 쏘아대자 겁에 질려 지서로 되돌아왔다. 허 경사는 상부에 보고도 않고 겁에 질려있다 평화통일자문위원인 김출수 씨로부터 밤 10시34분쯤 신고를 받고 밤 10시40분쯤 현장에 출동한 본서병력과 합류, 27일 새벽 2시40분쯤 우 순경이 숨어있던 평촌부락에 잠복했다.
그러나 우 순경이 총을 다시 난사하자 혼자 달아나 숨어버렸다.
의령경찰서 역시 신고자 이 씨의 전화를 받고 경무과장을 비롯, 고작 7명의 병력을 출동시킨 뒤 서장에게는 밤 11시7분쯤 보고했으나 연결이 제때 되지 않았다. 밤늦데 귀가한 서장은 이튿날인 0시40분쯤 이 사실을 경남도경국장에게 보고, 이 때문에 2차병력 출동이 그만큼 늦어졌다.
군부대의 협조요청도 신고를 받은지 2시간30분이 지난 상오 1시5분에야 하는 등 비상출동체제의 허술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 의령경찰서장은 소수의 게릴라출현 등 위급한 사태가 있을 때는 예비군비상을 걸어야 하는데 이것조차 하지 않았고 연락체제도 지리멸렬 상태였다.

<통신망 절단>
우 순경은 사건 당일인 26일 하오 9시30분 지서 무기고에서 카빈 2자루를 탈취한 후 본서인 의령경찰서로 통하는 경비전화선과 일반행정전화선을 모두 끊고 총질에 나섰다.
우 순경이 지서통신망을 미리 절단한 후 다시 궁류 우체국에서 교환양을 난사한 점으로 미루어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통신망을 두절시켜 범행을 막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반은 추정하고 있다.

<인질극>
27일 자정 넘게까지 4개 부락에서 50여명을 사살한 우 순경은 평촌리 문두출 씨(65·24일 사망) 강가에서 총소리를 듣고 신고하러 가던 방위병 서정수 이병(22·평촌리 406)을 상오 1시쯤 마을입구에서 만났다.
서 이병은 우 순경을 사태수습을 위해 출동한 경찰관으로 오인, 큰아버지 서인수 씨(69) 집으로 안내했다.
우 순경은 서 씨 가족에게『간첩이 지서를 습격, 부락민도 많이 죽고 지서장과 동료경찰관도 모두 숨졌으며 본서에 신고하러 간다』며 멀쩡한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우 순경이 문 씨 상가에서 『비상이 걸려 출동했다』고 속이고 문상객 등 12명을 사살한 참상을 담 너머로 언뜻 보고 온 집주인 서 씨 동생 서재갑 씨(57)는 불안에 떨면서도 우 순경에게 담배를 권하며 휴식을 취하도록 권했다.
이때 우 순경은 간접습격에 대비해야 한다며 집주인 서 씨 부인 전복순 씨(63)와 조카인 방위범 정수 씨 등 4명을 안방으로 몰아넣고 인질극을 벌였다.
우 순경은 새벽 3시40분쯤 멀리서 차 소리와 함께 어렴풋이 사람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뛰어들며 수류탄2개를 터뜨려 서 씨 가족 4명과 함께 폭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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