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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그릴에 고기 굽는 셰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식사는 ‘먹는 일’이 아니라 미술이나 음악만큼 ‘중요한 의식’이다.” 김광선 셰프가 쓴 미식 탐구 에세이 『셰프의 그릇』을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 이와 같은 말이 가장 첫 장에 등장한다. 솜씨 좋은 요리사가 최고의 도구에 최상의 재료를 써 만든 요리를 오리지널 빈티지 테이블에 앉아 즐길 수 있는 공간. 빅그린에그에서라면 이렇듯 ‘먹는 의식’이 가능해진다.

문화를 공유하는 식공간

aA 디자인 뮤지엄은 1900년대 영국 공장에서 가져온 창틀, 프랑스 고성의 연회실에 쓰이던 바닥과 같이 유럽 각지에서 실제 사용하던 빈티지로 기초를 다지고 찰스&레이 임스의 빈티지 체어, 톰 딕슨의 조명 등 디자이너들의 오리지널 가구와 조명을 놓아 꾸민, 그 자체가 박물관 같은 공간이다.

1층은 이를 오롯이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카페로, 지하는 라운지 바로 이용되었는데 얼마 전 지하 라운지가 스테이크하우스로 변신하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스모크 하우스라는 부제가 붙은 빅그린에그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벼운 식사와 함께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다이닝 펍’을 콘셉트로 한다.

수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구를 내 것인 양 사용하며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지만 빅그린에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분위기를 즐기는 데 있다. 단순히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닌, 아티스트가 선별한 음악과 영상을 감상하며 요즘의 트렌드를 나누는 자리가 되는 것.

aA를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스테이크 한 접시를 먹는 것만으로 디자인을, 음악을, 공간을 소비하게 된다는 사실은 꽤나 감동적이다.

매일매일 요리하는 것이 행복한 남자

이런 빅그린에그의 주방을 책임지는 이가 바로 김광선 셰프다.

그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본래 회계학을 전공하고 미국 회계사 시험까지 준비하였으나 돌연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전향, 압구정동에 ‘라붐’이라는 스튜디오를 열었고, 푸드스타일리스트로서 한창 활발히 활동하며 자리 잡을 즈음 다시 요리 공부를 떠나 셰프가 되었다.

회계와 경영을 전공한 학생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그리고 다시 요리사로 숨 가쁘게 달린 건 스스로에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은 결과다.

“미국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던 중 IMF가 터지며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는 걸 보았어요. 문득 회사에서 평생을 보내는 게 허무하게 느껴졌죠.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서 요리 잡지를 보게 되었는데 이걸 직업으로 하면 평생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생소하던 시절이라 고생도 많았지만 부단히 노력한 끝에 방송 출연도 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죠. 그런데 일을 할수록 진정으로 스타일링을 잘하기 위해서는 요리 실력이 탄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ICIF와 르 코르동 블루에서 공부하면서 요리 실력을 키웠습니다. 요리를 해보니 제게는 요리가 가장 잘 맞는 옷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여러 과정 끝에 셰프라는 직업에 도달한 그는 이를 천직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새롭고 흥미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1 aA 디자인 뮤지엄에 새롭게 문을 연 스테이크하우스 ‘빅그린에그’. 빈티지 가구 컬렉터인 김명한 대표가 모아온 오리지널 가구와 조명으로 꾸민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2, 3 이름처럼 초록색의 커다란 달걀 모양을 하고 있는 그릴 오븐 빅그린에그. 빅그린에그를 사용하는 레시피북이 따로 출간될 만큼 외국에서는 빅그린에그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릴 오븐계의 에르메스, 빅그린에그

빅그린에그. 이는 aA 스테이크하우스의 이름이자, 실제 커다란 초록색 달걀 모양을 하고 있는 그릴 오븐의 이름이기도 하다. 빅그린에그는 셰프들 사이에 꿈의 오븐이라 불리는 도구로, 동양의 아궁이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마 오븐과 같은 원리인데 세라믹 가마 안에 스테이크를 구우면 열기를 품은 오븐이 고기를 촉촉하게 익히고, 둥그런 오븐 안을 타고 흐른 참숯의 향기가 고기에 그윽하게 배어든다.

생선이나 채소, 빵 할 것 없이 어떤 재료든 넣고 굽기만 하면 맛있어지는 마법의 그릴이라는데, 그래서 바비큐 문화가 발달한 북미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시아에서 수입한 건 aA 스테이크하우스가 처음. 빅그린에그를 소유한 이들의 자부심은 남다른 것이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가 무척 활성화되어 있다.

1년에 한 번은 마이애미, 로키산맥 등지에 다 함께 모여 바비큐 페스티벌을 열고, 빅그린에그의 요리법을 모아둔 레시피북만도 여럿. 온라인을 통한 공유도 활발해 유튜브에서 빅그린에그에 대한 활용법이나 요리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광선 셰프의 요리 도구들

셰프 김광선은 회계학을 전공했다. 숫자의 효용성을 공부한 탓인지 그가 쓰는 물건은 하나의 도구가 여러 기능을 해낸다. 푸드 스타일링도 공부했다. 덕분에 그가 고른 식기는 접시 하나, 수저 하나도 감각이 넘친다. 제 역할을 야무지게 해내고 말쑥한 모양새를 갖춘 김광선의 멀티플레이어 도구들.

1 의료용 핀셋
집게손가락처럼 사용하는 도구. 가늘고 긴 집게를 구하기 위해 여러 재료상을 돌아다니다 결국 의료용품 전문점에서 더욱 섬세한 작업이 가능한 의료용 핀셋을 구입했다. 보통 바비큐를 할 때면 셰프 포크를 집었다 젓가락을 집었다 분주하지만 핀셋 하나만 있으면 여러 도구를 들었다 놓았다 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위생적이기까지 하다.

2 글로벌 나이프
칼날부터 손잡이까지 일체형으로 제작된 글로벌(Global)사의 나이프는 숯돌에 갈면 금방 날이 서고 사용도 편하다. 특히 톱니 모양의 유틸리티 나이프는 빵이나 단단한 채소, 껍데기가 두꺼운 과일까지 척척 잘라내는 멀티플레이어. 여러 가지 재료를 한 번에 손쉽게 손질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3 우드 플레이트
원형 티크 플레이트는 프랑스에서 나무를 수입하는 이에게 부탁해 주문 제작한 것, 사각 플레이트는 오크 나무를 잘라 만들었다. 빈티지한 느낌이 나는 나무 도마를 쓰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세계적 트렌드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요즘은 ‘방금 불에서 나온 듯한 느낌’을 내기 위해 고기를 담아내는 용도로 도마를 많이 사용한단다.

4 빈티지 은숟가락
주방 한쪽에는 다양한 크기의 은숟가락이 놓여 있다. 실제 은으로 만든 빈티지 숟가락은 양념하고 소스를 뿌리는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요리에 고가의 은숟가락을 쓰는 이유는 좋은 도구를 사용해야 요리에도 좋은 기운이 전달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빅그린에그는 100% 숯으로 요리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주방에 환기시설을 갖추는 데 가장 힘을 쏟았다. 재미있는 건 스테인리스를 주조로 한 후드가 기존의 공간을 구성하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사실이다.

최상의 재료로 완성한 한 접시

고기도 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는 말이 맞다면 아마도 김광선 셰프는 고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일 게다.

스테이크하우스의 오픈을 준비하면서 셰프는 김명한 대표와 함께 피터 루거, 올드 홈스테드, 트라이베카 그릴, 스미스앤울렌스키, 블랑카와 같이 뉴욕의 손꼽히는 레스토랑을 순례하며 스테이크를 맛보았다.

뉴욕 마커스버거와 같은 숯불 수제 버거, 스테이크, 갈비구이 등 현재 그가 선보이는 메뉴는 이렇게 엄청난 양의 고기 요리를 맛본 끝에 탄생한 것. 빅그린에그를 직접 써본 후 영감을 얻어 만든 것도 있다. 바로 통삼겹살로 만든 베이컨이다.

수제 베이컨을 만들려면 과정이 까다롭지만 빅그린에그를 사용하면 퇴근 무렵 고기를 넣어두기만 해도 다음 날 출근해보면 훈연 향이 자연스레 배어든 촉촉한 육질의 베이컨이 완성되어 있다고. 이 밖에도 고기 구울 때 쓰는 숯이며 접시에 올라가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공을 들이지 않은 것이 없다.

빅그린에그에 사용하는 숯은 계룡산의 숯 장인이 구운 참숯. 접시에 올리는 채소는 하남 농장에서 공수한 야생 베이비 루콜라, 돼지고기는 제주산 흑돼지 등 대개의 식재료를 산지에서 공급받아 쓴다.

“셰프는 좋은 재료를 찾는 눈과 귀를 항상 열어두어야 해요. 참숯은 장인이 직접 굽는 것이라 만드는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구운 숯 거의 대부분을 가져다 쓰고 있어요. 15일간 숙성시킨 고기를 참숯에 구운 다음 사과나무나 오크 나무 칩을 넣어 훈제 향을 입히면 풍미 진한 스테이크가 완성됩니다.”

이렇게 완성한 스테이크는 칼질할 때마다 야들야들 그야말로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입에 넣으면 말캉말캉 육즙이 터져 나온다. 곁들이는 야생 베이비 루콜라와 겨자잎은 쌉싸래한 맛으로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준다.

요리 서툰 주부도 좋은 도구를 사용하면 제법 그럴듯한 요리가 만들어지는 법인데, 솜씨 좋은 요리사가 최고의 도구에 최상의 재료를 써 요리하니 어찌 맛이 좋지 않을 수 있을까. 참숯의 열기를 품은 오븐이 구워낸 맛있는 요리는 정말이지 눈물 날 만큼 훌륭한 맛을 선사한다.

1 감자퓌레 위에 스테이크로 언덕을 만들고 로즈메리로 나무를 심은 듯한 모습이 연상되는 플레이트. 김광선 셰프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던 이답게 음식 하나를 담는 센스도 남다르다.

2 빅그린에그로 구운 패티를 넣은 버거에 야생 베이비 루콜라와 겨자채, 바삭하게 튀겨낸 감자튀김을 곁들이면 맛있는 한 접시가 완성된다.

기획=오영제 레몬트리 기자
사진=전택수(JEO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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