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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직격 인터뷰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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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오는 11월 9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사반세기를 맞는다.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재통일(Deutsche Wiedervereinigung)을 이뤘다. 독일의 재통일은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통일외교의 산물로 평가받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서독과 동독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을 분할 점령했던 4개국(미국·소련·영국·프랑스)을 대상으로 필사적인 통일외교 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이른바 ‘2+4 프로세스’를 거쳐 독일 통일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비극적인 분단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부러워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독일의 소중한 경험을 흡수해 통일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통일 과정에서 겪었던 대외정책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한국과 나누기 위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58) 독일 외무장관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초청을 받아 1박2일 일정으로 오늘 한국을 찾는다. 통일 직전이던 90년 4월부터 4개월간 통일외교를 맡았던 마르쿠스 메켈(62) 전 동독 외무장관이 함께 방한한다. 서울 도착에 앞서 슈타인마이어 장관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는 평화정책에 따라 국제사회를 위해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로이터=뉴스1]

-통일을 이룬 독일의 외무장관이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앞두고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번 방한의 가장 큰 목적은.

남북한, 신뢰 구축과 공동관심사 해결로 대치상황 풀길

 “한국과 독일 양국의 외교당국이 통일 노하우를 공유하는 ‘한·독 통일외교정책자문위원회’가 31일(오늘) 서울에서 공식 출범하고 제1차 회의를 연다. 이 자문위의 독일 측 위원이 함께 방한해 한국 측 위원들과 첫 회의에서부터 동·서독과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이 참여한 이른바 ‘2+4 프로세스’ 등 통독 경험과 한국의 통일외교 환경 등에 관한 논의를 할 예정이다. 자문위는 양국 외교부와 민간 인사들이 통독 과정에서 동·서독과 주변국의 외교정책 및 경험을 분석해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정책 제안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논의의 장이 될 것이다. 독일 측 자문위원장으로는 독·한 의원친선협회 의장을 맡고 있는 하르트무트 코슈크 독일 연방하원의원이 선임됐다. 코슈크 의원은 29일까지 북한을 방문하고 나서 방한한다. 통독 직전이던 90년 4월부터 4개월간 동독의 통독 외교를 책임졌던 메켈 전 동독 외무장관이 참가하는 것은 대단히 뜻깊다.”

 -독일은 통일 과정에서 미국·소련·영국·프랑스를 대상으로 독일 통일이 이들 나라에는 물론 전 세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자라는 세대를 위한 철저한 역사 교육으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통해 통독은 물론 통일 이후 국제사회 활동에서도 독일은 도덕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독일의 통일외교 경험에서 한국이 배울 점을 소개해 달라.

 “독일은 25년 전 아주 행복하고 정치적으로 유일무이한 정치 상황에서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특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만간 다가올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일(11월 9일)을 맞이하고자 한다. 한국민도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한반도 상황은 통일 당시 독일 상황과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통일이 이뤄진다면 이는 독일과는 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통일에 대한 남북한 간의 접근도 독일과는 또 다른,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독일은 한국에 외교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교훈’을 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신뢰 구축과 공동의 관심을 통해 대치상황을 극복한 독일 및 유럽의 경험이 다른 지역, 어쩌면 한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내가 탄생시킨 ‘한·독 통일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들과 이번에 함께 한국에 가는 이유다. 자문위 위원들은 경험 많은 정치가·교수·외교관으로 이뤄졌다. 독일과 한국의 위원들이 함께 회의를 하면서 좋은 아이디어와 제안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과거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정권에서 추진했던 ‘아겐다 2010 개혁정책’이 앙겔라 메르켈의 기민·기사연합 정권에서 빛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많은 나라가 이 정책에 관심이 많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도 한국의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유럽의 사례를 참고로 하겠다고 최근 말했다.

 “많은 나라가 독일의 개혁 경험에 관심이 많은 게 사실이다. 독일은 이 개혁정책의 추진으로 인해 단호한 개혁정책은 마침내 결실을 본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물론 개혁이 무르익고 국민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도 사실이다. 개혁이 가진 이런 점을 숨기지 않겠다. 개혁이란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무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개혁정책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실질적으로 손해를 보기도 한다. 현재 유럽에서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도 이런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독일은 우리가 결심한 개혁을 단호하게 함께 실행해나갈 것이다.”

 (아겐다 2010은 2003년 3월 슈뢰더 총리가 발표한 개혁안으로 노동시장노동법, 사회보장제도, 경제·재정정책, 교육과 기업혁신 등에 대한 독일 정부의 중장기적 개혁 프로그램이다.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을 동결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며 세금을 줄이는 정책이다.)

 -오늘날 독일은 유럽연합(EU)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이 지금보다 국제적인 책임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독일은 EU에서 큰 나라에 속한다. 글로벌 재정위기 상황에서도 독일은 정치적·경제적으로 매우 안정적이었다. 현재 독일은 어려운 개혁의 시기를 넘기고 좋은 상황을 맞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동유럽·중동·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여러 위기 사태로 국제사회가 엄청난 도전을 맞으면서 우리의 안보와 안정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에 대한 국제적 기대가 커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맞은 지금, 독일은 더 이상 특수한 상황이라는 핑계로 몸을 숨길 수도 없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우리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 우선 독일 정부는 국제사회를 위해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독일의 대외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뒤부터 유엔과 EU에 귀속된 평화정책이다. 독일을 둘러싼 세계는 엄청나게 복잡해졌다. 따라서 나는 독일 내에서 독일 대외정책의 기반과 목표, 수단 등에 대해 폭넓은 논의가 이뤄지도록 하고 했다. 우리는 독일 국민과 함께 EU가 직면하고 있는 대외정책적 도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적극적인 대외정책에 대해 국민이 이해하고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은 한국에 대한 중요한 투자국이고, 수많은 독일 기업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잠재력이 있음에도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분야, 협력 강화를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분야가 있을까.

 “주요 연구개발 부문에서 독일과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바이오기술, 나노기술, 로봇기술, 그린 카, 재생에너지 등 강점을 보이는 미래기술에서 우리는 더욱더 협력을 촉진하고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몇 년간 많은 독일 기업이 한국에서 기반을 닦았으며, 현대 등 한국 기업들은 독일에서 연구개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양국 간 교역규모는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EU와 한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은 자유교역을 개선하고 있다. 지금은 FTA를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까다로운 행정절차로 인한 장벽의 철폐 등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독일은 지금도 이미 한국의 최대 투자국에 속한다. 한국 정부가 규제 완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이는 또 하나의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독일의 우수한 교육제도와 연구 시스템은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도와 과학자, 엔지니어를 부른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의 실업교육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이는 한국과 독일 청년층의 상호 교류라는 측면에서도 많은 의미가 있겠다. 이를 강화할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교육 부문에서의 한·독 협력은 엄청난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한국 유학생 5200여 명이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독일은 이와 같은 교류를 다양한 장학금 프로그램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300여 개의 대학 간 동반관계는 학자 간에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준다. 독일은 직업교육 분야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이와 같은 네트워크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올해 양국 간 협력협정이 체결됐다. 독일은 성공적인 실무지향적 교육법을 기꺼이 전수하고자 한다. 물론 청소년 및 학생 교류와 관련해서는 먼 거리와 언어적 장벽으로 인한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음악과 미술, 그리고 최신 기술에 대한 한국 청년들의 관심이 증대하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통일 문제 외에도 양국 간에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국제사회에서 양국이 함께할 일로 무엇이 있을까.

 “많은 독일 사람은 ‘한국’ 하면 역동적이고 성공적인 경제국가의 이미지와 일상생활에서 더 이상 떼려야 뗄 수 없는 제품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외무장관으로서 이번 한국 방문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독일이 글로벌 과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있어서도 한국이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이다. 특히 올해에는 연이어 위기사태가 터지고 전 세계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국제사회가 신속하게 공동으로 대처하는 일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러한 때에는 세계의 평화와 안정, 복지를 촉구하는 국가들이 더욱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과 한국 양국은 우선순위가 비슷하다. 녹색기후기금을 유치한 한국은 글로벌 기후 보호의 허브로 발전하고 있고 독일도 기후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천명한 동북아평화협력구상도 지지한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동북아에서 대화 및 신뢰 구축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

채인택 논설위원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는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민·기사연합과 연립정권을 이루고 있는 좌파 사회민주당 소속의 거물 정치인이다. 1999~2005년 사민당 소속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정권 때 비서실장을 지낸 최측근이다. 독일 대연정 당시에도 메르켈 총리 아래에서 외무장관(2005~2009년)과 부총리(2007~2009년)를 지낸 관록의 정치인이다.

 독일 중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작은 도시인 데트몰트 출신인 그는 기센대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1991년 ‘노숙자 양산을 막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문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직후 니더작센주의 주지사 비서실에서 미디어법 보좌관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니더작센주 주지사가 그의 평생 정치 동지로 1998~2005년 독일 총리를 지낸 슈뢰더였다. 98년 사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슈뢰더가 총리가 되자 그를 따라 총리비서실로 옮겼다. 비서관을 거쳐 이듬해 비서실장을 맡아 임기를 마칠 때까지 함께했다. 비서실장을 맡는 동안 ‘회색 능률(Graue Effizienz)’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는 ‘최고지도자를 배후에서 좌지우지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라는 뜻의 ‘회색 추기경(Graue Eminenz)’이라는 말을 살짝 비튼 것이다.

 2009년 총선에서 사민당 총리 후보로 선출돼 메르켈 총리에 도전했으나 사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기민·기사연합이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하면서 야당인 사민당의 대표로서 의회에서 메르켈에 맞섰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 이후 연정에 합류하면서 외무장관으로 복귀했다.

 외교장관으로서 슈타인마이어는 현실적인 외교노선으로 주목받았다. 유럽이 러시아를 고립시키기보다 협력을 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며 친러시아 정책을 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에는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만나기를 거부한 뒤 “요즘은 그를 만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슈타인마이어는 독일 국내에서 우파의 메르켈에 대적할 좌파의 거의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외무장관으로서의 업무수행도도 평가가 좋다. 2010년 8월 부인이 신장이식이 필요하자 자신의 신장을 내놔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