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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블록 뉴욕대 교수 & 서울대 김기현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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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김춘식
김춘식 기자 중앙일보 부국장
네드 블록 뉴욕대 석좌 교수는 철학과 뇌과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분야 최고봉이다. 최근 관심 분야는 주의(注意· attention)다. 철학, 뇌과학 모두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지만 네드 교수의 인상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했다. [김춘식 기자]

21세기는 뇌의 시대다. 미국과 유럽은 뇌 연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스마트폰 매출이 조금 늘고 또 준다 해서 대세는 아닐지 모른다. 뇌의 비밀이 풀리는 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서점에 가면 ‘당신이 모르는 뇌의 신비’ ‘뇌 사용 매뉴얼’ ‘뇌를 알아야 사랑에도 성공한다’는 식의 책들이 눈에 띈다. 한데 뇌는 자연과학이나 의학의 연구 영역일 것 같지만 사실은 철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영정 기념 강의 시리즈’를 위해 최근 방한한 뉴욕대 네드 블록 교수와 그를 초빙한 서울대 철학과 김기현 교수를 15일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인터뷰했다. 블록 교수는 ‘정신철학(philosophy of mind)’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철학은 뇌에 대한 과학자들의 황당한 결론 막는 안전장치

-블록 교수의 이번 한국 방문 목적은.

 ▶김기현 교수=김영정 교수는 심리철학·인지과학 전공자였는데 2009년에 입학관리본부장으로 일하다 과로로 순직했다. 이장무 전 총장이 김 교수를 추모하기 위해 기금을 조성했다. 김 교수 전공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들을 초빙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철학, ‘마음철학’인 정신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블록 교수=물론 정신철학 자체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정신철학과 과학을 연계하면 과학이 홀로 연구할 때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분석철학자이기도 한데, 분석철학은 매우 명료한 질문을 한다. 질문이 명료해야 답도 명쾌하고 그 결과 진보도 더 빠르다.

 ▶김 교수=뇌를 다루는 중심적 학문 중 하나인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은 철학자·심리학자·컴퓨터공학자·언어학자 등이 참가하는 학제 간 연구 분야다. 블록 교수는 철학자로서 뇌 연구에 참가하고 있는 선구자다. 뇌 연구에 철학자가 빠지면 종종 말도 안 되는 결론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블록 교수 같은 철학자의 공헌이 매우 중요하다. 철학은 뇌·마음 연구의 신화를 깬다.

 ▶블록 교수=철학자들은 과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막대한 자금이 뇌를 고해상도로 촬영하는 데 투자되고 있지만,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수준의 이해가 필요하다.

 ▶김 교수=즉 철학자들은 뇌 연구, 마음 연구에 필요한 큰 그림을 제시한다.

 -철학자들은 방법론상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자연과학자들과 잘 소통할 수 있나.

 ▶블록 교수=그렇다.

 -마음철학, 인지과학 분야에서 가장 신나는 진전이 있다면.

 ▶블록 교수=지각(知覺·perception)과 의식적 지각(conscious perception) 분야에서 큰 진전이 있다. 지각과 인지(認知·cognition)의 차이점이나 그 경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개념(槪念·concept) 분야에서도 어린이들이 어떻게 개념을 습득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연구 성과는 실용적, 특히 산업 분야에서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

 ▶블록 교수=철학 연구의 직접적인 실용성은 없다. 단 마음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자연히 실용적 응용도 쉽다. 또 철학은 ‘무엇이 실용적인 가능성이 없는가’에 대해 잘 알려준다. 고해상도 뇌 촬영과 같이 무엇이 잘못된 투자인지를 지적해 주는 것이다.

 -잘못된 투자를 하는 이유는.

 ▶블록 교수=사람들은 마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무엇인지 이해가 부족하다. 마음에 대한 고차원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이를 제공하는 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이다.

 ▶김 교수=마음의 아키텍처(architecture)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블록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구조에 보다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연구비를 얻기 위해 ‘비윤리적’인 연구 제안을 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블록 교수=그렇다. 인공지능(AI) 연구에 있어서도 ‘막다른 골목’ 같은 결과가 뻔히 보여도 연구비를 타 연구를 감행한 경우가 있었다.

 ▶김 교수=마음은 신비스럽다. 현대철학과 과학은 그 신비를 어떻게 깨고 있는가.

 ▶블록 교수=내가 보기엔 마음은 지금도 신비하다. 의식이라는 게 신비롭다. 야구로 치면 1루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김 교수=더 이상 신비롭지 않은 게 있다면.

 ▶블록 교수=사고란 무엇인가에 대해 완벽한 이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 종교적 체험의 신비에 대해서는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블록 교수=나는 종교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최근 흥미로운 발견을 소개하자면 진화론 반대론자들이 예전에는 진화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됐으나, 최근 인지과학 연구 성과에 따르면 그들도 진화론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이해한다.

 -철학자들에게 영혼과 마음의 관계란.

 ▶블록 교수=내게 영혼이란 마음의 비물질적(immaterial) 측면이다. 영혼이 있다고 믿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이원론(dualism)을 표방하는 것이다. 나는 유물론자(materialist)다. 인간을 분해하고 또 분해하면 무기물만 남는다는 것이다. 영혼이 없어도 모든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블록 교수의 말은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는 영혼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도 마인드의 속성 중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 두고 있다고 본다.

 -어떤 철학자가 독실한 종교 신자라면 그는 연구에 그의 믿음을 적용할까. 아니면 그에게 연구와 신앙은 별개의 것인가.

 ▶블록 교수=같은 크리스천이라 하더라도 신앙·연구 스타일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존재론(ontology)에 달린 문제다.

 -마음은 곧 뇌인가. 만약 그렇다면 마음철학은 종국엔 뇌철학이 될 것인가.

 ▶블록 교수=정신철학은 이미 뇌과학철학과의 공통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마음철학은 자유의지의 존재에 대해 뭐라고 하는가.

 ▶블록 교수=매우 어려운 문제다. 자유의지에는 용어적 혼란이 내재돼 있다.

 -마음-몸 이원론(mind-body dualism)은 지금도 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인가.

 ▶블록 교수=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철학·과학에서 더 중요한 이분법(dichotomy)은 무엇인가.

 ▶블록 교수=마음-뇌 이원론(mind-brain dualism)이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인가.

 ▶블록 교수=종교를 떠나 철학적 논쟁이 마음-뇌 이원론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는 마음의 차이와 연관 있나.

 ▶블록 교수=나는 연관 있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다. 문화적 차이는 물론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인지와 지각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 오늘날엔 의미가 없는 고전도 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오늘날에도 중요한가.

 ▶블록 교수=그렇다. 무의식적인 동기나 무의식적인 정신 과정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대해 프로이트만큼 또렷이 말한 사람은 없다.

 ▶김 교수=무의식 차원에 대한 프로이트와 심리적인 설명에서 지나치게 나간 프로이트는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

 -데카르트도, 플라톤 도 중요한가.

 ▶블록 교수=물론 그렇다. 모든 위대한 역사적 인물은 오늘날에도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다. 그리스 철학에 대한 개론서로 레베카 골드스타인의 『구글플렉스의 플라톤(Plato at the Googleplex)』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김 교수=많은 사람이 데카르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공헌은 엄청나다. 마음에 대한 논의의 토대를 마련한 게 그다.

 -프로이트와 데카르트는 ‘반증 가능한(falsifiable)’ 주장을 펼쳐 과학에 기여했다고 보면 되나.

 ▶블록 교수=그렇다. 검증 가능한 주장을 그들의 저작에서 발견하려면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불경도 마음의 철학과 과학에 도움이 되는가.

 ▶블록 교수=물론 그렇다. 내가 일하고 있는 뉴욕대에서도 최근 불교·인도철학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불교로부터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뇌의 미래는? 인간의 뇌도 바뀔 것인가.

 ▶블록 교수=아직 뇌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뇌를 바꾸려면 뇌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이해가 우선, 변화가 나중이다.

 -언제쯤 뇌에 사전·백과사전 같은 정보 문헌을 다운로드할 수 있을 것인가. 로봇 기자·디자이너·화가는 언제 등장할 것인가.

 ▶블록 교수=뇌에 대한 이해 없이, 특히 수년 내로 그런 게 이뤄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현재 마음·뇌에 대해서 몇 %나 알고 있는지.

 ▶블록 교수=0.00001%인지 그 이상인지, 계산을 하려면 의식이 어떤 것인지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김 교수=우리는 사실 의식에 대해 친숙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의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아직 의식에 대한 많은 신화가 있다. 탈신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 우리 독자들에게 강조할 말이 있다면.

 ▶김 교수=철학의 효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철학은 ‘섬’처럼 돼 버렸다.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점에서 문·사·철(文史哲) 중에서도 철학의 공헌이 큰데도 말이다.

 ▶블록 교수= 책임은 우리 철학자들에게 있다고 본다. 우리가 뭘 하는지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뉴욕타임스에는 과학자들이 기고하는 ‘스톤(Stone)’이라는 칼럼난이 있다. 철학자들은 기고 등 사회적 활동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글=김환영 논설위원
사진=김춘식 기자

[인터뷰 후기] 딸 자랑하는 이웃집 아저씨

세계적인 석학도 기회가 생기자 딸 자랑을 했다. “미래에 철학자가 되려는 초·중·고생은 지금 무엇을 해야 되는가”라는 질문 대목에서다. 블록 교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어린이 철학 교육을 위한 거대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어린이들은 철학적 논쟁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한다. 블록 교수의 딸도 이해가 빨랐다. 어린이들은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유연한 어린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마음이 닫혀 있어 ‘철학하기’가 힘들다. 어른은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한다. 미래 철학자를 꿈꾸는 어린이들도 『구글플렉스의 플라톤』이라는 소설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고 블록 교수는 강력히 추천했다(아쉽게도 이 책은 아직 우리말로 번역이 안 됐다).

네드 블록 교수는 1942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71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주로 MIT(1971~96)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96년 뉴욕대(NYU)로 옮겨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김기현 교수의 연구 분야는 분석철학·심리철학·현대인식론이다. 미국 애리조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오클라호마대·서울시립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에 부임했다. 한국인지과학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