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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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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민복 단장은 “6·25는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란 대북 삐라에서 힌트를 얻어 직접 책을 찾아보고 전쟁 참가자 얘기를 들어본 뒤 탈북을 결심했다”며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사진=오종택 기자

하늘의 바람길은 땅 위의 바람길과 다르다. 풍향이 정반대일 때도 있다. 매일같이 지상 3000m의 바람길을 좇는 사람이 있다. 이민복(56)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이다. 그는 항공기상청이 예보하는 고도별 풍속과 풍향을 살피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평양으로 가는 바람길이 열리는 시각에 맞춰 그는 수소통과 대형 풍선이 가득 실린 5t 트럭을 몰고 접경지역 어디든 달려간다. 고도 3000m를 향해 날리는 7m 높이의 풍선에 매달린 3.5㎏짜리 주머니에는 전단 3만 장과 DVD, USB 스틱, 1달러 지폐 몇 장, 의약품, 라면 등이 들어 있다. 한 번 나갈 때마다 그는 수십 개의 풍선을 날린다. 많을 때는 200개까지 날린다. 지금까지 그가 날린 풍선은 대략 8000개. 그는 두께 0.03mm의 포장용 비닐을 이용해 전단살포용 풍선을 직접 만들었다. 제때 정확하게 주머니가 터지도록 도와주는 기계식 타이머도 개발했다. 물에 젖지 않도록 얇은 비닐에 인쇄한 초경량 전단도 만들었다. 고압수소를 다루기 위해 가스안전관리사 자격증도 땄다. 그는 대북풍선운동을 규격화·전문화·체계화한 ‘풍선의 달인’이다. 최근에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에 대해 특허까지 출원했다. 대북전단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던 3일,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그를 만났다.

대북전단 공개적으로 날리는 행태 이 기회에 바로잡아야

-북한이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무주고혼이 될 것을 각오하라’며 살생부에 올렸다.

 “걱정 안 한다. 북한이 그러면 오히려 신이 난다. 내가 날리는 풍선이 효과가 있다는 뜻 아닌가.”

 - 댁이 포천인 걸로 아는데.

 “서울에서 그쪽으로 옮겼다. 바람이 불면 언제라도 뛰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엔 어떤 일을 하나.

 “풍선을 날리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평소 하는 일도 거의 삐라(전단)와 관련된 것들이다.”

 - 지금까지 날린 풍선과 전단의 양은.

 “지금 형태의 풍선을 직접 고안한 것이 2005년 7월이다. 그때부터 매년 1000~1500개의 풍선을 날렸다. 지금까지 뿌린 삐라가 4억 장 정도 되는 것 같다.”

 - 직접 고안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 달라.

 “처음 풍선을 날리기 시작한 게 2003년인데, 그때는 고무풍선으로 했다. 30분 정도 날다가 터지기 때문에 멀리 못 가고, 전단도 많이 못 보낸다. 그래서 대형 풍선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심리전을 하는 국방부 쪽에 알아보니 풍선 하나 날리는 데 300만원쯤 든다고 하더라. 나는 폴리비닐을 이용한 풍선을 만들어 내용물 포함, 단가를 10만원으로 낮췄다. 내가 전수해 지금은 모두 이 방식을 쓰고 있다.”

 - 그 돈은 어떻게 조달하나.

 “후원자들이 보내준다. ‘이민복은 진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알음알음으로 보내주는 후원자가 많다.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풍선에 후원자 이름을 쓴다. 날린 뒤에는 사진을 찍어 e메일로 보내준다.”

 - 혹시 정부가 지원하는 돈은 없나.

 “(날짜별 후원 내역이 적힌 장부를 보여주며)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보라. 정부에서 받는 돈은 한 푼도 없다. ”

 - 생활은 어떻게 하나.

 “후원자가 보내주는 풍선 값의 약 10%를 인건비 명목으로 받고 있다.”

 -귀하가 날린 풍선에 북한군이 고사총을 쏘는 바람에 남북 간 교전 상황까지 발생했다. 우발적 사고가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그럴 가능성을 우려해 이미 여러 차례 정부에 건의했다. 공개적으로 떠들면서 삐라를 날리는 행위는 원천봉쇄해 북한에 도발의 빌미를 주지 말라고. 그럼에도 일부 단체는 미리 시간과 장소를 공개하고 보여주기식 행사를 하고 있다. 나는 철저하게 비공개 원칙을 지킨다. 지난달 10일 내가 몰래 날린 풍선 중 하나가 가스 부족으로 좀 낮게 날아가는 바람에 교전 상황이 벌어졌다. 예방주사 맞은 셈 치면 차라리 잘됐다고 본다. 이 기회에 일부 단체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 삐라 문제로 남북 고위급 접촉이 무산됐고, 접경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북한이 총 몇 발 쐈다고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서해상 군사훈련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군의 훈련을 트집 잡아 연평도에 조준포격을 하지 않았나.”

 - 대북풍선운동 단체들이 전단 살포를 당분간 중단하고, 향후 재개하더라도 비공개로 하기로 했는데.

 “공개적으로 해온 단체들의 문제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

 - 전단 살포를 계속하겠다는 건가.

 “물론이다. 이건 인권운동이고, 헌법정신에 맞는 운동이다. 떠들지만 않으면 누구에게도 피해를 안 준다. 네거티브 수법으로 북한을 자극하자는 게 아니다. 순수한 팩트만 알려줘도 북한은 무너지게 돼 있다.”

 - 최근 경찰과 국정원의 방해로 ‘표현의 자유’에 관한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비공개로 몰래 했는데 어떻게 방해받았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신변보호 명목으로 경찰이 밀착경호를 하면서 내 일거수일투족이 상부에 다 보고되고 있다. 내가 풍선을 날리러 나가면 바로 해당 지역 군경에 전달된다. 군경은 통일이고 뭐고 관심 없다. 그저 자기 동네에서 시끄러운 일이 없기만 바란다. 그렇다고 막지는 못하니까 북한이 도발을 해도 우리는 책임 못 진다고 안내문을 써 붙인다. 그걸 보고 동네 주민들이 몰려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할 일을 못해 피해를 봤으므로 소송을 낸 거다.”

 - 정부가 법적 근거가 없어 못 막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막는다는 뜻인가

 “경찰직무법에 사회질서를 위협할 때는 경찰 명령에 따르도록 돼 있다. 문제는 이 규정을 원칙 없이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조용하게 하기 때문에 사회질서를 위협하지 않는데도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워지면 나까지 막는다.”

 - 정부의 행태가 이중적이란 얘긴가.

 “일관성이 없다. 막고 안 막고 하는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또 권한을 남용한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한다고 막고, 남북 대화 한다고 막는다.”

 - 과거 정부에선 어땠나.

 “노무현 정부 때는 몰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절 간섭을 안 했다. 경찰의 밀착경호가 없었던 데다 민간인 사찰을 예민하게 여겼기 때문인지 미행 같은 걸 안 했다. 그때 제일 신나게 했다.”

 - 전단 문안은 직접 작성하나.

 “이 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게 문안을 쓰는 거다. 딱 보고 꼼짝 못하게 써야 한다. 정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서 한 수가 아니라 세 수 앞까지 보고 글을 쓴다. 지금은 완전히 나를 공개한다. 형제나 친구처럼 얘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e메일과 전화번호까지 다 밝힌다. 뭘 가르치려 들면 거부감을 갖게 돼 있다. 내가 어떻게 깨달아서 이곳에 왔고, 와보니 어떻더라는 식으로 쓴다.”

 - 삐라로 북한 주민을 깨우치겠다는 뜻인가.

 “지금 북한 주민은 눈과 귀를 가린 채 벼랑으로 끌려가는 꼴이다. 그걸 붙잡아 떨어지지 않게 하는 인도주의가 삐라다. 또 남북은 형제이고 동족인데 서로 싸우고 있다. 북한은 왜 미국놈 데려와 동족을 죽였느냐고 날뛰며 지금도 도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북한이 먼저 일으킨 것이다. 그걸 알려주자는 거다. 미국은 철천지원수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해방시킨 은인이다. 남한은 피해자다. 그것만 깨달아도 증오가 없어질 것 아닌가. 증오가 없어져야 화해와 화합이 된다. 삐라는 그런 평화의 메시지다. 증오할 대상이 있다면 그건 싸움을 시킨 전범자, 즉 수령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미국과 남조선을 미워할 게 아니라는 거다.”

 - 일부 단체는 삐라에 이설주 추문과 합성사진을 담기도 한다던데.

 “오히려 반발심만 키우지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보내는 삐라에는 ‘타도’ 같은 표현도 없다.”

 - 삐라를 뿌리는 진짜 목적이 뭔가.

 “북한의 가장 큰 특징은 폐쇄다. 라디오와 인터넷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또 수령을 신격화한 신정(神政) 정치다. 서른 살 청년을 놓고 ‘수령님을 목숨으로 사수하자’고 외치는 사회다. 폐쇄를 뚫고, 거짓 우상을 깨야 한다. 햇볕정책으로도 안 됐고, 6자회담으로도 안 됐다. 평화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풍선이다. 핵은 양성자나 음성자로 못 깬다. 중성자로만 깰 수 있다. 3000m 높이로 날아가는 풍선은 누구도 못 막는다. 보이지도 않고, 레이더에 잡히지도 않는다. 삐라가 바로 중성자다.”

 - 그건 귀하의 검증되지 않은 신념일 뿐이다.

 “소련은 라디오 때문에 망했다. 북한도 그럴까 봐 라디오와 인터넷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지만 풍선은 못 막는다. 북한은 풍선 때문에 망한다. 그 결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결과인가.

 “지금까지 80여 차례 항의가 들어왔다. 지금도 삐라만 아니면 고위급 접촉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삐라 때문에 망할 정권이면 이미 망해도 몇 번 망하지 않았을까.

 “최근 중앙당에서 온 비공개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삐라 때문에 체제가 붕괴된다는 소리가 3년 전부터 중앙당 회의 때마다 나왔다고 하더라.”

 -북한 체제 특성상 ‘재스민 혁명’은 일어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쿠데타 역사에 관한 책을 보면 70%가 궁중쿠데타였다. 나머지가 민중봉기다. 나는 두 가지가 분리된 게 아니라 연관돼 있다고 본다. 화폐개혁 실패 때문에 역사상 처음으로 각 지구당 비서들이 주민들 앞에서 사과했다. 박남기는 총살됐다. 그 정도로 지금 북한은 흐물흐물해져 있다. 삐라나 DVD로 재스민 혁명 같은 분위기가 조금만 조성되면 궁중쿠데타가 날 수도 있다.”

 -통일대박론을 어떻게 생각하나.

 “통일을 하려면 통일비용이란 허구부터 버려야 한다. 중국에 투자하면서 통일비용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북한을 중국처럼 다른 나라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다고 민족이 없어지겠는가. 인건비 하나만 갖고도 통일은 남는 장사다. 그럼에도 통일비용이란 말 때문에 다들 도망간다. 통일비용이 아니고 통일투자라고 이름을 바꿔야 한다. 또 통일주식운동을 해야 한다. 1만원을 냈다면 통일 후 원금에 수익금까지 붙여 반드시 돌려준다고 국가가 보증해야 한다. 그러면 통일하지 말자고 해도 하자고 할 거다.”

 -탈북했으면 남한 사회에 열심히 정착해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삐라보다 강력한 대북 메시지 아닐까.

 “ 나는 과학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북한이 제대로 무너지면 탈북자 문제에서 인권·핵 문제까지 모든 게 싹 풀린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즐겁다. 나는 남한 사회에 최고로 잘 정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이민복 단장은 …

1957년 12월 황해도 서흥 출생. 74년 김책공대 입학. 76년 순천농업전문학교 졸업. 79년 남포농업대학 졸업, 동(同) 연구소. 82년 북한농업과학원 옥수수연구소 연구원. 90년 탈북 후 북송. 91년 재탈북. 92년 중국에서 옛 소련으로 탈출. 95년 한국 입국(유엔난민 1호). 96년 통일원 자문위원. 2003년 한국총신대학원 졸업,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

인터뷰 후기

경찰 4명이 교대 경호

그는 2명의 건장한 청년과 함께 나타났다. “남들이 저보고 그래요. 총리급 경호를 받고 있다고.” 북한의 ‘살생부’에 명단이 오른 2008년부터 그는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4명의 경찰관이 24시간 교대로 그를 경호한다. 그는 ‘양날의 칼’이라며 쓸쓸히 웃었다. 사생활은 아예 없다고 했다.

 2시간 넘게 얘기를 나누고 나자 ‘대북전단 살포대행업’이란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후원자는 고객이고, 그는 고객의 주문에 따라 북한으로 풍선을 대신 날려 주는 사업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명분과 실리를 겸비한 신종 비즈니스? 전화로 솔직한 느낌을 얘기했다. “글쎄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후원금만으로 하는 건 아닙니다. 그걸로는 부족해 우리 단체가 모은 돈으로 날리기도 합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날리는 이들 중에는 명예와 돈을 노리고 하는 사람도 있다”며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는 자신과 선을 그었다.

 그는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창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 와서 결혼한 부인은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이혼을 택했다. 그 스스로 풍선사업을 ‘3D업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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