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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기여입학제 도입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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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학 기여입학제 문제가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대학 총장들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1일 '제한적인 기여입학제'를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 문제는 1986년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심의위원회에서 사학 발전 정책의 일환으로 처음 제기된 뒤 최근까지 논란을 거듭해 왔다. 2001년 3월에는 김우식 당시 연세대 총장이 '기여우대제' 도입 방침을 밝혀 논란을 일으켰고, 2002년 4월에는 정성기 포항공대 당시 총장이 한 토론회에서 기여입학제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대학의 재정 확충을 위해서 기여입학제 도입은 불가피하다는 게 대학들의 논리였다. 그러나 "현행법상 금품을 내고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부정입학이며 국민정서상 용인되기 어렵다"는 정부의 반대에 부닥쳐 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대학총장들이 제한적인 기여입학제 허용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대학총장들이 사실상 처음으로 '집단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 "재정난 타개 위해 불가피"=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은 돈이라는 게 대학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러나 국내 대학의 예산 규모는 미국의 10분의 1, 일본의 4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한 실정이다. 현재 정부가 사립대에 지원하는 예산은 사립대 전체 재정의 5%에도 못 미친다. 예산의 70%가량은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한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는 학생 수 감축에 따른 대학들의 재정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총장들이 제한적이지만 기여입학제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 같은 취약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대교협 이현청 사무총장은 "기여입학 학생의 자격을 엄격히 하는 등의 장치를 마련하는 방식의 제한적인 기여입학제가 허용되더라도 대학 발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인탁 연세대 교수는 "기여입학제가 도입되면 연구비.장학금 등에 대한 재정지원뿐만 아니라 시설확충 등 세계적 대학이 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작용 우려도 여전=대학총장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여입학제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교육과시민사회 윤지희 대표는 "경제력에 의해 좋은 대학 입학이 결정된다는 것은 국민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며 지금으로선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대학 입학이 신분 이동의 유일한 통로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스스로 엄격한 전형 기준에서 벗어나면 국민의 소송 제기로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재 헌법과 교육기본법 등 현행법에도 위배될 소지가 있어 허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 어느 나라도 돈을 낸 대가로 대학에 입학하는 나라는 없다"며 "이를 법제화해 달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도입될까=대학총장들이 '제한적인'기여입학제 허용을 건의한 것은 나름대로 '누을 자리를 보고 발을 뻗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총장들은 기여금의 용도 지정 등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정원 외로 기여입학을 허용해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일정 학력 수준을 요구하는 등의 제한을 두는 것도 고려 중이다. 이 같은 제한을 두면 교육부도 전향적으로 허용 여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

'기여우대제' 도입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키곤 했던 연세대의 경우 ▶외부인사와 내부인사가 절반씩 참여한 기부금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외부 감사를 거쳐 기부금 운영 내용을 사회에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또 기여금 학생 선발은 정원 외 특별전형으로 하되 정원의 1~2% 수준으로 하고 내신 3등급.수능 2등급 이상 등의 학업 능력을 갖췄을 경우에만 입학을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기여입학제라고 해도 당장 도입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교육부 일각에서는 대학입시의 완전 자율화 시점에 가서는 허용 문제가 자연스럽게 검토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재로서는'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공식 입장이기 때문이다.

김남중.최현철.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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