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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빅뱅·진화론, 신을 부정한 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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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프란치스코(사진)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오늘날 우리가 세상의 기원으로 여기는 빅뱅이론도 신성한 창조자로서 하느님의 개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진화론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했다. 이날 교황청 과학원에서 열린 ‘자연에 대해 진화하는 개념들’이란 주제의 총회에서다.

 빅뱅이론은 137억 년 전 대폭발로부터 우주가 시작됐다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며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했다는 이론이다. 둘 다 ‘하느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했다’는 기독교적 창조론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러나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보완적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교황은 빅뱅이론을 두곤 “창세기를 읽다 보면 하느님이 모든 걸 가능케 하는 지팡이를 든 마법사인 것처럼 여겨질 위험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며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이 각자에 주신 규칙에 따라 성장해 사명을 완수하도록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혼돈’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란 원칙에 따라 창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화론을 두고도 “진화론이 창조란 개념과 배치되는 게 아니다. 진화하려면 원천적으로 (진화할) 존재가 먼저 창조돼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600년대 지동설을 주장한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기독교와 과학이 반목해왔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있다. 한국·미국 등의 개신교에서는 진화론을 부인하고 있다. 가톨릭은 하지만 상대적으로 과학을 포용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진화론에 대해 “타당한 과학적 접근”이라고 했고 요한 바오로 2세도 96년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다. 빅뱅이론의 경우 1920년대 첫 제안자 중 한 명이 벨기에 출신 사제인 조르주 르메르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이 돌출적인 게 아니란 의미다. 교황은 더욱이 과학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기도 하다.

 종교학자들은 교황이 빅뱅이론과 진화론을 맞다고 여겼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발언이라고 여긴다. 한 종교학자는 “과학과의 갈등을 줄이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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