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첫 한국인 시장 “암 투병 끝에 재선 성공 새마을운동 도입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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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두 번째라고 더 쉬운 건 아니었다. 중남미 최초 한국인 시장으로 주목받았던 정흥원(67·사진) 페루 찬차마요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2위와의 표 차이는 277표였다. 지난 5일 선거를 치른 뒤, 검표를 거쳐 당선이 확정된 그를 e메일로 만났다.

 사실 누구보다 재선이 간절했던 게 정 시장 자신이었다. 지난해 말 신장에서 폐로 암세포가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세 자녀 중 두 아이를 희귀병으로 잃었던 그다. 정 시장은 “나에게 왜 이 시련이 또 닥쳤는지 절망적이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치료차 방문한 한국의 한 병원 의사로부터 “암세포와 싸우려 하지말아라. 대신 인생의 목표를 다시 세워보라”는 조언을 듣는다. 그때 ‘그럼 언제 죽을지 모르니, 시장으로서 맡은 바 책무를 다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병세가 악화되지 않아 이번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정 시장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의 권유로 찬차마요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1986년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96년 페루 리마로 옮겨왔다. 2000년 인구 20만 명의 찬차마요에 정착했다. 현지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무료 급식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 2010년 당시 4선의 현직시장을 물리치고 시장이 됐다.

 한국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찬차마요를 돕겠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서울시 지원으로 상수도 개선 사업이 진행 중이고 코이카가 보건소를 짓고 있다. 정 시장은 “ 한국의 새마을운동 모델을 도입해 낙후된 찬차마요를 개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곳의 질 좋은 커피를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해발 1500~2000m 고지대에 위치한 찬차마요는 커피 재배에 알맞다.

 시장 월급을 전액 기부하는 것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정 시장은 “시장 월급이 한국 돈으로 약 150만원 정도다. 이걸로 놀이터 4개를 더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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