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초고속 전파자' 가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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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내에서 첫 사스 추정환자가 나오면서 수퍼 전파자(super spreader)의 등장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수퍼 전파자란 여러 사람에게 빠른 속도로 전염병을 퍼뜨리는 특이 체질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해외의 경우 사스에 감염된 중국 광둥성의 한 의사는 홍콩에서 1백여명에게 사스를 퍼뜨렸다. 기내에서 사스 환자에게 알약을 전달하다 감염된 뒤 가족 모두와 의사에게 전파시킨 싱가포르의 한 스튜어디스도 수퍼 전파자로 볼 수 있다.

이 스튜어디스는 증세가 회복됐지만 아버지 등 2차 감염자들이 숨졌다. 사스의 경우 본인은 증상이 가볍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면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4백38명의 집단 환자가 발생한 홍콩 아모이가든 아파트 집단감염도 수퍼 전파자의 특이한 전파력에 의한 경우일 가능성이 있다.

홍콩 위생 당국에 따르면 배관공사 잘못으로 하수도가 각 세대의 화장실로 역류하는 과정에서 한 사스 감염자의 배설물을 통해 바이러스가 아파트 전체로 퍼졌다는 것이다. 이 분석이 맞다면 이 감염자는 수퍼 전파자로 봐야 한다.

또 사스 바이러스가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복도를 통해 퍼졌다면 2차 감염된 주민 중에 전파력이 유독 강한 수퍼 전파자가 끼어있을 가능성이 있다. 아모이 가든처럼 빠르게 집단 감염을 일으킨 사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모이 가든에서 감염된 일부 환자들은 잠복기 중에도 사스 증상을 보이는 등 병세가 매우 빨리 진행됐다. 증상도 무겁고 다른 사스환자에게는 없는 설사 증상까지 나타나 전문가들은 이를 특이 사례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수퍼 전파자의 역할을 규명하는 게 사스 확산을 막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바이러스 전문가 볼프강 프라이저 박사는 "사스 확산에는 인간의 바이러스 전파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수퍼 전파자의 역할에 대한 규명이 사스 퇴치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퍼 전파자를 사전에 가려낼 수 있다면 사스의 급속한 2차 감염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철근 기자 <jcomm@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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