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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성폭행' 부족 형벌 당한 파키스탄 여성 법정투쟁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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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집단 성폭행 피해자인 무크타르 마이(中)가 28일 파키스탄 대법원의 가해 혐의자 재구속 결정이 내려진 후 인터뷰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 AP=연합]

"정의가 실현돼 기쁘다. 내게 모욕을 줬던 모든 남자가 죗값을 치르길 바란다."

동생의 죄를 뒤집어쓰고 집단 성폭행이라는 벌을 받은 파키스탄 여성이 3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승리했다. 파키스탄 대법원은 28일 원고 무크타르 마이(31)에 대한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석방됐던 혐의자 13명을 재구속하도록 결정했다. 하급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은 기존에 제출됐던 모든 증거를 재검토하게 된다. 마이의 변호사는 "증거들이 제대로 검토만 된다면 유죄판결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펀자브 지방의 작은 마을 메르왈라에 살던 마이는 2002년 6월 타 부족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남동생을 대신해 벌을 받았다. 부족회의는 그 부족 남자들이 마이를 집단 성폭행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고 결정했다.

마이는 꼼짝없이 성폭행을 당한 뒤 용기를 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에서는 피고인 중 6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8명이 무죄 석방됐다. 그러나 올 초 펀자브 고등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사형을 선고받은 6명 중 5명이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됐고 1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다. 격분한 마이는 대법원에 항고했다. 이틀간 마이의 증언을 들은 끝에 대법원은 마이의 손을 들어줬다. 이슬람 사회의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에 쐐기를 박는 결정이었다.

저명한 인권변호사 아스마 제한기르는 "총체적으로 기능 장애 상태에 빠져 있던 파키스탄 법률 체계에 새 희망을 던져 주는 결정"이라며 반겼다.

그동안 마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해 국제 여론에 호소하려던 마이의 출국을 막았다. 그러다 미 국무부로부터 항의를 받고 철회하기도 했다. 출국 금지 사유는 "해외에 파키스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이는 법정투쟁을 하는 동안 인권단체와 개인 기부자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고향에 두 개의 여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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