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벤처신화 사기행각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금융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주 급작스럽게 법정관리를 신청한 벤처기업 모뉴엘에 대해 국책 금융기관과 시중은행들이 허위 수출서류만을 근거로 수천억원의 부실대출을 해 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로봇청소기 등으로 급성장한 모뉴엘은 해외 법인을 활용해 수출 규모를 부풀리거나 아예 가짜 수출서류를 만드는 수법으로 무역보험공사의 보증과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희대의 금융사기범에게 금융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꼴이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모뉴엘의 대규모 부실대출이 드러나자 금융감독원은 뒤늦게 관련 금융회사들을 대상으로 긴급 특별검사에 들어갔고, 검찰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뒷북 검사와 뒷북 수사가 아닐 수 없다. 모뉴엘의 사기행각 조짐은 거의 1년 전부터 포착됐었다. 매출액 전부에 해당하는 매출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형적인 자금 조달 행태나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회사에서 실제로 영업활동으로 들어온 현금 유입액이 고작 15억원에 불과한 비정상적인 재무구조를 보면 단박에 이상징후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은 이런 이상징후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수출 여부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서류만 보고 거액의 대출금을 선뜻 내준 채 제대로 사후 관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곤 부실이 표면화되자 서로가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위험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그대로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검사 결과를 보고 제도 개선을 협의하겠다”고 했다. 지난 2월 드러난 KT 자회사 협력업체의 거액 사기대출 이후에도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이런 부실한 리스크 관리와 금융감독방식을 확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후진적인 금융 부실사고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밖에 없다. 금융권은 제2, 제3의 모뉴엘이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감독 당국은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리스크 관리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