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 국토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할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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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공공기관 이전 후보지로 꼽히는 전남과 충북 일부 지역의 땅값이 요동치고 있다. 한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는 전남 장성군과 담양군의 논값은 단박에 두 배나 뛰고 땅을 보려는 외지인들로 북새통이라고 한다. 땅값이 급등하면 혁신도시에서 제외하겠다는 당국의 엄포는 그 약발이 이틀을 가지 못했다.

하루 뒤 나온 수도권 발전대책은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미봉책으로 난타당하고 있다. 그동안 나온 시시콜콜한 대책들까지 재탕.삼탕으로 긁어모았다는 지적이다. 기계적 균형에 치중하다 보니 수도권 공장총량제 완화 같은 알맹이는 쏙 빠지고 구체적인 예산확보 방안도 담지 못했다. 수도권 주민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다급한 사정이 딱하게 여겨질 정도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들까지 '백지에서 재검토하라'고 촉구했겠는가.

행정복합도시나 혁신도시 등은 처음부터 정치적 논리에 따라 진행돼 왔다. 어차피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이러한 대대적인 국토 개조는 땅값 불안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이런 결과를 정부만 몰랐다면 한심한 노릇이다. 이미 정부는 30곳을 투기지역으로 신규 지정해 전 국토의 25%가 투기장화됐음을 인정했다. 더 이상 부동산 거품을 중개업소나 아파트 부녀회 탓으로 몰 일도 아니다. 국민의 눈에는 일부 투기세력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정부의 무능으로 비칠 뿐이고, 오히려 정부가 거품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국토나 도시의 기능은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다. 설사 옮기더라도 한두 개 시범사업부터 시작해 그 영향을 살피면서 차례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정도다. 어쩌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대상은 수도권 대책뿐 아니라 이 정부의 총체적인 국토 개조 계획일지 모른다. 당장 지금과 같은 초기단계의 땅값 폭등도 내다보지 못한 정부가 아닌가. 행정부처와 수많은 공공기관을 몽땅 옮기고 난 뒤 일어날 그 엄청난 부작용을 제대로 짚어보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민은 불안하고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