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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에 뜨는 3부자 지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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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5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백야축제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삼부자가 차례로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는 음악회가 열린 것이다. 아버지 네메 예르비(68), 맏아들 파보(42)와 막내 크리스티안(32)이 그 주인공이다.

세계 음악계에서 삼부자가 모두 지휘자인 경우는 보기 드물다. 게다가 네메의 작고한 큰 형(발로)도 지휘자여서 예르비 가문은 지휘 명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에스토니아 출신인 이들 삼부자는 올해로 망명 25주년을 맞는다. 1980년 당시 에스토니아 국립오페라와 국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이었던 네메는 아내와 2남1녀를 데리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국을 떠날 때 전 재산을 빼앗겨 수중엔 단돈 200달러 뿐이었다. 하지만 네메는 81년 세계 굴지의 공연기획사 CAMI와 전속 계약을 맺고 84년 로열 스코티시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가 되면서 서구 음악계에 화려한 신고식을 했다. 90년엔 적자에 허덕이던 디트로이트 심포니를 맡아 미국내 정상급 교향악단의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간 아버지를 따라 공연장과 리허설장을 매일같이 드나들던 파보와 크리스티안도 주목받는 지휘자로 우뚝 섰다. 커티스 음대를 나온 파보는 신시내티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등으로 활동 중이다. 뉴욕 맨해튼 음대와 미시간 주립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크리스티안은 LA필하모닉 부지휘자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등을 맡고 있다.

네메는 91년 에스토니아가 독립한 뒤 고국 돕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매년 여름 에스토니아 파누에서 지휘아카데미를 열어온 그는 2008년엔 수도 탈린에 세계적 수준의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를 개관할 예정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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