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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위기설 날려버린 남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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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21일부터 서울에서 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렸다. 6.15 기념행사에 이어 열린 이번 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9월 13일의 백두산 회담 등을 비롯한 향후 남북 회담의 물꼬를 여는 중요한 합의를 이룩했다.

비록 1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렸을 때 한반도를 들썩이게 했던 격정은 상당 부분 희석됐지만, 이른바 6월 위기설이라는 근거 없는 공포심이 한반도 주변 상황의 악화를 조장했었다는 점에서 이번에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은 이러한 위기설을 날려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남북한이 '새로운 차원의 협력의 제도화' 길을 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 줬다.

일본이나 미국의 일부 과격한 분석가는 북한 정권의 호전성 등을 들어 파국적 상황의 조성을 촉진하거나 북한에 대한 경제적 봉쇄 등을 상정한 강경책을 높게 말하면서 평화.협력세력을 비현실적이라고 매도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그들의 논리가 비현실적임을 입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쿠바와 이란에 대한 봉쇄가 성공했느냐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중국과 접경한 지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정치적 봉쇄가 미얀마 등에서 보듯 오히려 중국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최근 북한 경제가 급속하게 중국 자본에 예속되면서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의 하나로 편입돼 가는 현실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동북아의 자본주의 세력 및 한국에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역사상 적대적 세력과 국경을 맞대야 했던 국가의 예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대규모 전쟁과 충돌의 결말을 맞았던 것은 아니다. 비록 갈등은 반복됐다 하더라도 동시에 협력과 공존의 지혜도 커져 간 것이 인류의 역사다.

라이터와 종이가 같이 있다고 해서 항상 불이 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라이터를 켜고, 불 켜진 라이터에 종이가 달라붙어야 불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현재 동북아 정세에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것은 북한 정권의 성격만은 아니다. 과거사 인식을 놓고 동북아의 통합적 역동성에 걸림돌이 돼 가고 있는 일본의 현 집권층이나 경제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중국의 주변국 외교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나 비인권적 상황에 대해 쏟는 관심과 함께 일본의 잘못된 과거사 인식 시정에 노력해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초조감에서 파국과 대립만을 걱정할 게 아니라 중국과 협력해 중국이 자신의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외교적 책무를 수행하도록, 또한 중국의 힘 행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보다 더 넓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력 균형만으로는 안정과 평화가 보장되는 게 아니다. 평화에 대한 자만이나 다음 위기가 지난번 위기와 비슷할 것이라는 안일한 전망 또한 평화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21세기 동북아가 지난 세기와 다른 것 중 하나는 전쟁을 용인하는 태도가 훨씬 약해졌으며 전쟁보다는 상생과 협력의 이익이 더 크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상황을 회고하면서 말한 것처럼 국가들이 물질적 번영에 만족하지 못하고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투쟁의 길로 내달린다면 세상은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6월이 근거 없던 6월 위기설을 증폭했던 세력을 약화시키고, 이러한 위기를 해소시키기 위한 5월 모스크바에서의 한.러, 한.중 정상회담 그리고 6월의 한.미, 한.일 정상회담에 이은 남북한 장관급 회담으로 마무리됐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