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걸쳐 8명 "23년 현역 복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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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철씨 가족이 거수경례 시범을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셋째아들 덕현(44), 둘째손자 민규(23), 김홍철(81)씨, 다섯째아들 판기(38), 둘째아들 덕건(47), 첫째손자 민하(24). 손자들은 큰아들 덕우씨의 아들들이다. 김경빈 기자

한국전쟁이 55주년을 맞았다. 안보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환경도 바뀌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세태는 호국을 말하면 '수구'로 인식되는 분위기까지 엿보인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창군 이래 국가의 부름에 가족 중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응한 '병역의무 이행 명문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바다에선 서해교전 3주기를 맞아 당시 전사한 해군 장병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가 처음으로 함상에서 열렸다.

할아버지와 다섯 아들, 두 손자. 3대에 걸친 남자 8명 전원이 현역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병무청이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가족에게 부여하는 '병역 이행 명문가' 김홍철(81)씨 가족의 병역사다.

55년 전 오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김씨는 두 달 만인 8월 27일 자원 입대했다. '증서 제11-15-030272호'. 그의 한국전 참전 유공자증이다. 1956년 김씨가 중사로 전역한 뒤 장남 덕우(55)씨부터 막내 판기(38)씨에 이르기까지 다섯 아들 모두 현역으로 입대했다.

양주 포병부대에서 인천 병참부대, 진해 해군본부까지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들이 복무했다. 덕우씨의 두 아들 민하(24).민규(23)씨 역시 지난해 공군 병장과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이들 8명이 복무한 기간은 총 281개월로 23년5개월이다.

김씨 3대에게 병역 이행은 자연스러운 일상사 같은 것이었다. 맏딸인 김영미(49)씨는 "막내 동생이 입대할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며 "하지만 아버지가 역정을 내실까봐 이런 마음을 입 밖에 내지도 못했다"고 했다.

손자 민하씨가 2002년 1월 입대할 때 할아버지 김홍철씨는 용돈을 쥐여 주며 "건강히 갔다 오라"고 했다. 민하씨는 "가족 모두가 군 생활을 마쳤기 때문에 군대는 당연히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민하씨도 군 생활 초반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통제된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게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라고 기억했다.

병무청에 따르면 오경해(74)씨 가족도 오씨에 이어 두 아들, 세 손자가 모두 현역으로 군을 마쳤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서울 용산의 교통학교(현 철도대학)에 다니던 오씨는 학도병에 뛰어들었다. 52년 제주도 제2훈련소에서 부사관으로 정식 입대했다.

"그때는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연히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해 9월 그는 간성에 배치됐다.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간성을 비롯한 강원도 전선에선 사상자의 전사 처리도 못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고 한다.

장남 혜성(53)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군에 가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오씨가 육군 상사로 전역한 73년 혜성씨는 3사관학교 9기의 육군 장교로 임관했다. 그가 중령 예편했던 2002년 오씨 손자이자 혜성씨 조카인 승환(23)씨가 의정부 301보충대에 입소했다.

지난해 11월 승환씨가 만기 제대했으니 오씨 3대는 52년부터 2004년까지 52년간 부사관.장교.사병으로 대를 이어 나라를 지킨 셈이다.

◆ 병역 이행 명문가 접수=병무청은 이달 30일까지 '병역 이행 명문가'를 신청받는다.

병무청에 따르면 3대 모두가 현역을 마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금의 60대 후반이자 70대인 39년 이전 출생자들의 평균 면제율은 46.3%나 된다. 50~60년대 출생자들의 면제율도 30%대다.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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