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학 서울대회] 이란 남녀 여성학자 10인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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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여성학대회 참가자들이 이화여대에서 종군위안부 관련 전시물을 보고 있다. 강정현 기자

"투표하고 오느라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했어요. 누가 되든 여성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대통령이면 좋겠습니다."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에 참석한 이란인 여성학도 제이납 아베디니 나삽. 그는 한국에 와서도 인터넷을 통해 자국의 대선 진행상황을 수시로 살펴보고 있다. 이슬람공화정인 이란에서 이번 대선 결과는 여성들의 큰 관심사다. 여성권익 향상에 부정적인 강경보수파 후보가 우세하다는 분석 때문이다.

21일 오후 7시 이화여대 기숙사 로비에는 나삽을 비롯한 이란 여성학을 대표하는 남녀 10명이 모였다. 결선 투표를 남겨둔 대선을 비롯해 여성의 의료.복지.교육.농촌여성의 빈곤 등 이란 여성계가 안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들은 입을 모아 "최근 30년 사이에 이란 여성의 권익이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1979년 이슬람개혁 이후, 특히 97년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점차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슬람아자드대학 연구소의 모하마드 메흐디 네이더리는 "대학생의 62%가 여학생이고 부통령 9명 중엔 여성 부통령도 있다"고 말했다. 마잔다란 의과대학의 모하마드 모흐세니 교수는 "요즘 이란 여성계의 키워드는 '평등(equality)'"이라며 "정치.경제.행정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번 대선 후보들도 모두 남녀가 평등한 환경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란의 젊은 여성들에겐 취업이 가장 큰 이슈다. 테헤란 알자라 여대에서 심리치료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나삽은 "이슬람 전통에 의해 성별에 따라 다른 직업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맘 호메이니 국제대학의 바흐람 나바제니 교수는 "2~3년 전 여성 판사 임용을 허용하는 법이 통과됐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아직 행정부.법조계.군대의 고위직에 대한 여성 진출은 법적으로 제한돼 있다고 맣했다.

그들은 그러나 이슬람적 전통이 여성권리를 억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모흐세니 교수는 "해외 언론 등이 이란의 현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며 "여성계가 추구하는 평등 역시 이슬람의 틀(Islamic frame) 안에서의 평등"이라며 이슬람 전통을 강조했다. 나삽도 역시 "우리는 이슬람의 전통을 존중한다. 세계여성학대회 등을 통해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 대안을 찾아가는 게 세계화 아니냐"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문경란 여성전문기자, 홍주연.박성우.박수련 기자 <moonk21@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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