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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혼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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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래 잊혀졌던 옛풍습이 되살아났다. 전통혼례가 차츰 유행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낯설고 어설프나 어딘지 반갑고 멋스러운 장면이다.
최근 문화재보호협회가 「한국의 집」에서 가진 전통혼례 시범의식은 이재의 『사례변찬』을 바탕으로 성균관이 고증한 위에 가정의례준칙의 정신에 따라 간소화된 것이었다.
모두 65개 절차가 17개항목으로 줄었다.
결혼의 순서를 적은 홀기(홀기)를 든 집례가 혼례식을 선포한다.
차일을 친 마당에 큰 자리가 펴있고 그 위에 초례상이 놓였다. 초례상 양편에 작은 탁자를 두고 소채와 밤·대추·건포등 과일과 잔반 수저가 갖춰있다. 술병도 놓여 손님 맞을 채비가 되어있다.
집례가 『서출승마』를 외치면 신랑이 말을 타고 나온다. 물론 옛풍습대로가 아니니까 지금은 걸어서 나온다. 쌍초롱을 든 사람이 앞을 인도하고 목안(나무 기러기)을 든 사람이 뒤따른다.
신랑이 모안상앞에 꿇어앉아 목안을 내려놓고 두 번 절하고 있으면 신부가 등장한다. 신부는 두여인의 부축을 받는다. 원삼 족두리에 큰수건으로 가린 두손을 합쳐 이마에 대고있다.
이것은 혼례의 시작에 불과하다. 물론 과거의 전통혼례의 복잡한 절차를 많이 간소화한 것이다.
간소화했다지만 역시 구식혼례는 지금의 신식혼례보다 절차가 복잡하고 낯설어 보인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게된 때문이다.
전통혼례라 해도 사실은 유교적 의식이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조의 풍속이다.
신부가 족두리를 쓰고 연지를 찍는 풍습은 고려 때 들어온 몽고풍습이니까 복합의례다.
전통혼례의 육례도 사실은 중국적인 혼속이었다. 납채·문명·납길·납폐·청기·친영등 복잡하고 장황한 절차는 우리 나라에선 거의 무시되었다.
한국적인 생활과 풍습속에서 편리한대로 분식결혼의식이 창조되고 수정되었던 것이다.
혼례는 흔히 시끌벅적한 동네잔치가 되고 푸짐한 장난기도 곁들이곤 했다.
신랑이 대례청으로 가는 도중에 동네청년들이 재를 뿌리기도 했다. 기분 나쁜 장난기이기도 했지만 그래야 재액을 때운다는 그럴싸한 합리화도 있었다. 앞길에 불을 놓든가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대례를 행할 때도 밤이나 대추를 신랑 입에 물려주곤 우스운 소리로 신랑을 웃기려고 애쓰곤 했다.
한국인의 혼속은 이렇게 엄숙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의식이었다. 사실 결혼은 그런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런 한국인의 멋을 지금 모두 재현하긴 어렵다. 시대도 변하고 생활풍습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전통혼례가 이 현대화한 서울에서 재현되는 것은 그저 반가울 뿐이다. 유창하고 멋스러운 옛 한국인의 인정도 살아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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