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석탑 되살리려 헐긴 헐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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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붕괴 위험을 막고, 일제가 콘크리트로 덧댄 부분을 뜯어내 민족 정기도 되살리겠다며 해체한 익산 미륵사지석탑. 막상 원형을 알 수 없어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석탑(전북 익산시)의 해체.복원 문제를 놓고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고민에 빠졌다. 미륵사지석탑은 7세기 백제 말기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 석조건축물. 1998년 붕괴 위험성이 제기돼 안전 진단을 받았고, 그 결과 석탑을 해체해 보수하자는 결정이 났다. 2001년부터 연구소 주관 아래 석탑의 해체가 진행돼 지금은 6층 가운데 1층과 기단부만 남아 있는 상태다.

고민의 핵심은 헐긴 헐었지만 다시 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치밀한 대책 없이 헐어버렸기 때문에 생긴 고민이다. 1400여 년의 풍화를 거친 돌들은 압력을 견디는 힘이 약해졌다. 분리해 낸 돌조각의 절반 이상을 재조립에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새 돌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원형 복원' 취지에 어긋난다. '복제품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석탑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완전 해체한 경우는 국내에서 미륵사지석탑이 처음이다.

'미륵사지석탑 해체 및 복원'을 주제로 지난 17일 서울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학술대회는 석탑 복원 작업의 한계를 새삼 절감하게 했다.

미륵사지석탑의 원형이 어떠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본래 7층이었는지 9층이었는지도 여전히 논란 중이다. 이상해(성균관대 건축학) 교수는 "대책없는 해체였다. 원형을 알 수 없고 복원 구상이 확립되지 않았다면 최소한의 보수만 하는데 그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원이란 말도 수정해야 한다. 원형을 모르는데 무슨 복원인가. 기술적인 처리는 향후 언제나 환원할 수 있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 만약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더라도 원구조물은 손상되지 않아야 하며, 향후 보존처리가 반복적으로 행해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 세대는 단지 과도적 관리자일 뿐이며,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고 기술도 발전할 미래 세대가 손 볼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보존 실무를 책임진 문화재연구소의 입장은 다르다. "석탑이 기울어지고 훼손돼 붕괴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복원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재연구소의 배병선 건조물 연구실장은 이날 ^해체 직전의 형태로 복원 ^6층까지의 부분 복원 ^7층 혹은 9층까지의 완전 복원 등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하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복원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토론에 참석한 김성우(연세대).박경식(단국대) 교수와 강찬석 문화재전문위원 등은 "'6층까지의 부분 복원'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윤홍로 문화재위원은 "콘크리트의 알칼리성이 돌을 계속 부식시켰고, 콘크리트만 제거하려다가 자칫 석탑 전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해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초 미륵사지석탑을 해체할 때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콘크리트로 덧댄 부분을 뜯어내 '민족정기'를 살린다는 명분도 한몫 했다. 문화재위원을 역임한 이채녕 전 서울대 화학과 교수는 "일본인들이 덧댄 것은 석탑이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뜯어낸 뒤 새로운 지지물로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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