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장과는 반대로 가겠다는 부동산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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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혼란스럽다. 정부는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부동산 정책 간담회에서 "부동산 제도를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곧바로 "기존 정책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간의 정책 실패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정부가 밀어붙인 부동산 정책이 성공했다는 것도 아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정부의 정책수단이 미흡해 신뢰성마저 상실할 위기에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패한 것도 아니고 성공한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에 대한 정부의 설명은 '정책의 방향은 옳은데 정책수단의 강도가 약해서 약발이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의 답은 다 알고 있는데 이것이 채택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이해 관계와 잘못된 관행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최근의 부동산값 급등은)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시장의 실패"라고 강변했다. 이 같은 정부의 인식을 바탕으로 한 대책은 뻔하다. 지금까지 해온 규제와 수요억제 대책의 강도를 더 높이는 것이다.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와 전문가들의 목소리에는 아랑곳없이 기존 정책을 고수할 뿐더러, 오히려 더 세게 밀어붙이겠다는 각오다. 당장 국세청은 '명예를 걸고' 대대적으로 세무조사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수요가 많은 중대형 평형 아파트의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판교 신도시는 거꾸로 소형 임대아파트를 늘리고, 개발방식도 민간이 아닌 공영개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친시장적인 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아예 시장원리와 철저히 반대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제 시장과의 전쟁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정부의 고집이 이기는지, 아니면 시장의 힘이 이기는지 해보자는 오기다. 실패할 경우엔 과연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지난 2년간의 시행착오는 규제와 단속 위주의 부동산 정책이 갖는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