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대체시설 검토 실현 가능성엔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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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방한한 서울공항 앞에서 반대 시위에 대비해 경비를 서던 경찰 병력(사진위)이 고이즈미 총리 일행 차량이 정문을 통과하기 바로 전 철수해(사진아래) 평온한 모습을 보인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 일행을 태운 차량이 정문을 통과하고 있다. 이날 서울공항에서 방한 반대 시위는 없었다. [연합]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일 야스쿠니 신사와는 별도의 추도 시설 건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제3의 추도 시설이 세워지면 일본 지도자는 물론 외국 요인도 거부감 없이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에게 참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래전부터 야스쿠니 문제의 해결책으로 거론돼 오던 방안이다.

'국민 여론을 고려하면서'라는 조건을 달긴 했으나 야스쿠니 참배를 고집하던 고이즈미 총리의 입장에선 한발 나아간 것이라 할 수 있다. 19일 연립여당인 자민당 및 공명당의 간사장들이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내년도 예산에 추도 시설 검토를 위한 비용 배정에 전향적인 의견을 밝힌 점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추도 시설 건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여전히 비관적인 부분이 많다. 고이즈미 총리는 17일에도 일본 기자들에게 똑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곧이어 "어떤 시설을 만들어도 야스쿠니 신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설령 제3의 추도 시설을 만든다고 해도 고이즈미 또는 후임 총리가 언제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수 있음을 시사한 말이다. 그럴 경우엔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회담이 끝난 뒤 별도로 일본 수행기자단에 "사전 조정에 따른 것으로 (회담 중에는) 직접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본심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2001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었다. 이후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당시 관방장관이 새 추도 시설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으나 자민당 내부 반발에 밀려 제대로 검토도 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한.일 정상회담을 보도하면서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견해차를 메우지 못했다"는 논조를 유지했다. 회담을 실시간으로 전한 NHK와 지지(時事)통신 및 주요 신문들의 인터넷판 기사는 대부분 '합의엔 이르지 못해'라는 제목을 달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수행기자단에 "노 대통령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야스쿠니 참배 중단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나는 야스쿠니 참배가 절대 전쟁을 미화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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