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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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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몇 해 전 국내 여러 도서관을 취재하다 『도서관 전쟁』이란 일본 소설을 추천받았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분이 권하기에 묵직한 내용일 줄 알았는데, 단숨에 읽을 만큼 재미있었다. ‘라이트노벨’이라 불리는 일본 소설이 대개 그렇듯, 줄거리보다도 극적 설정이 흥미로웠다.

소설 속 세상은 사후 검열이 합법화된 지 30년이 지난 시대다. 무장한 검열관들은 수시로 서점에 출동해 책을 몰수하고, 책은 쉽게 소유하기 힘든 것이 된다. 도서관은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검열과 몰수에 자료수집권으로 맞서며 시중에서 사라진 다종다양한 책까지 고루 갖춰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도서관은 검열 세력에 대항해 전투도 불사한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건 마침 국내에서도 전자책 단말기들이 연이어 출시되던 무렵이다. 그래서 원인은 다르지만 언젠가는 이 소설에서처럼 책이라는 실물이 퍽 귀해질지 모른다는 상상도 해봤다. 물론 이런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이, 아니 책을 읽는 행위가 전보다 귀해진 듯하다. 일례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취합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신간 도서 발행부수는 2007년 1억3200만 부가 넘었던 것이 지난해에는 8650만 부에 턱걸이할 정도로 줄었다.

 지하철을 타도 금방 보인다. 사람들은 대개 스마트폰과 시간을 보낸다. 책이라는 형태의 읽을거리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드물다. 사실 스마트폰만 손에 쥐어도 뉴스로, SNS로 온갖 읽을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게 초고속인 세상이다. 책은 쓰고 펴내는 데 최소 여러 달이 걸린다. ‘지식의 반감기’라는 표현도 있듯, 몇 년 안에 무용지물이 될지 모를 책 한 권 분량의 지식보다 훨씬 방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하지만 한 권의 책처럼 완결된 형태는 아니다.

 책의 기원은 낱장의 두루마리를 한데 묶기 시작한 고대 로마인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2000년 넘게 인류가 지식과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근간 노릇을 해 왔다. 데이비드 와인버거 같은 디지털 전문가는 책이 그 물리적 지면의 한계 때문에라도 중단점, 즉 일종의 완결성을 가져야 했다고 설명한다. 이 원칙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완결성이야말로 디지털에 넘쳐나는 파편적 정보 사이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기승전결의 서사가 붕괴된 현재의 풍경을 더글러스 러시코프 같은 이론가는 ‘현재주의’라고 짚어내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디지털이 가져온 새로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도 그를 비롯한 저자들은 여전히 책이라는 형태로 완결성을 추구하는 글을 쓴다. 인류의 사유를 지금껏 지배해 온 책을 온전히 대체할 수단이 아직 없다는 방증인 셈이다. 어쩌면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출판계의 불황만이 아니라 2000년 역사를 지닌 책이라는 매체가 생존하기 위한 투쟁일지 모른다. 기왕이면 책의 편을 들고 싶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